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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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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방에 걸어 놓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문구 등을 흔히 좌우명(座右銘)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좌우명의 원래 판본은 글귀가 아니라 그릇이다. 그 이름은 기기(攲器)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자신의 의자 오른쪽에 이 그릇을 두고 늘 지켜봤다고 한다. 이 그릇에는 묘한 기능이 들어 있다. 물을 적당히 붓지 않으면 앞으로 기울어지고, 물을 중간 정도 채우면 똑바로 선다. 그러나 물을 가득 부으면 엎어져 모두 쏟아내는 그릇이다.

공자(孔子)가 환공의 사당을 방문했을 때 이 그릇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순자(荀子)』라는 책에 전해진다. 그릇의 효용은 과도함과 부족함을 모두 경계하자는 데 있다.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으로 자신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다. 자리의 오른쪽에 두고 새긴다는 뜻의 ‘좌우명’이라는 말이 예서 유래했다.

공자가 목격했다는 이 그릇은 후에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후대 왕조의 통치자들은 여러 차례 이 진기한 그릇을 다시 만들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복제품은 1895년 청(淸)의 광서제(光緖帝)가 만든 것으로, 현재 베이징(北京)의 고궁박물원에 있다.

1900년대 초반 중국 대륙을 주름잡았던 장제스(蔣介石)의 이름은 중정(中正)이다. 기기를 살핀 공자가 “(물이) 가운데 채워져 바로 선다(中而正)”고 했던 말에서 따온 듯한 인상이다. 흔히 사용하는 그의 이름 제스(介石)는 자(字)로서, 역시 너른 바위처럼 굳건해 평형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역경(易經)』에 등장하는 용어다.

행위와 사고에 있어서 가운데를 지향하는 것은 통합적인 자세다. 극단에 머물지 않고 가운데로 나아가 양쪽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태도다. 지식인의 표상인 공자, 중국의 역대 왕조 통치자 모두 이 덕목을 매우 중시했다. 장제스는 이름과 자에 이 뜻을 담으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이 시대의 일부 지식인과 종교인 등이 현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며 연일 시국선언이라는 것을 내고 있다. 그 내용이 지나치다. ‘시국선언’으로 이름할 만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상황을 보는 안목의 편벽(偏僻)함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선언에 담아 대중에게 공표하기 위해서는 극단을 삼가야 옳다. 부족한 상황인식, 넘쳐나는 정치의식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인’이라는 이름값을 할 수 있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