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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미국대중문화 편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금 천국에선 50~60년대 라스베이거스 쇼 무대를 주름잡던 딘 마틴과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가 새로운 쇼 준비에 분주할 듯하다. 그들의 맏형격인 프랭크 시내트라가 마침내 합류했기 때문이다.

천국의 빗속에서 혼자 노래하던 ( 'Singing in the Rain' ) 진 켈리도 천국의 지도를 펼쳐놓았을 것 같다. 프랭크와 함께 뉴욕을 돌아다니는 히트 뮤지컬 '온 더 타운' 의 새 버전 '온 더 헤븐' 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고복수나 남인수 또는 배호가 함께 무대를 꾸미자고 하면 내켜할까. 아무리 천국이라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타계를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제는 우리가 미국의 팝문화를 향한 50년대식의 그 치명적 짝사랑을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다.

그의 노래 '마이 웨이' 의 서두를 패러디하면 '이제 끝이 가까워졌으니, 우리가 마지막 커튼을 내리자' 는 것이다. 50년대 전후 (戰後) 의 남루한 한국땅에서 스크린에 비쳐진 미국의 마천루.전원주택.광활한 평원은 한국인의 눈에는 그대로 피안의 세계였을 것이다.

페리 코모.패티 페이지.냇 킹 콜의 달콤한 목소리가 복음처럼 들렸다면 과장일까. 최근 출간된 '궁핍한 시대의 희망, 영화 - 50년대 우리잡지에 실린 영화광고' (열화당) 를 보면 그 당시 스크린에 투사된 우리의 심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미국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한, '웅혼무비의 일대 로망' 운운하는 요란한 카피를 단 이 흑백사진들 속에서 프랭크 시내트라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윌리엄 홀든.험프리 보가트.제임스 스튜어트.몽고메리 클리프트.제임스 딘.버트 랭커스터.존 웨인.헨리 폰다….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됐지만 프랭크 시내트라가 조연으로 놀 때 은막을 휘어잡은 스타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우리가 사실은 프랭크 시내트라 때문이 아니라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우울한 트럼펫 연주 때문에 기억하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도 물론 들어 있다.

그럼에도 프랭크 시내트라의 죽음이 필자에게 미국 팝문화에 대한 반성적 자문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가 지난 반세기간 활동한 미국 연예계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앞서 든 영화광고 모음 책에는 놀랍게도 비토리오 데 시카.페데리코 펠리니.로베르 브레송.프리츠 랑 같은 세계영화사를 장식한 유럽의 예술감독들의 영화가 간간이 섞여 있다.

50년대를 지나 60년대를 거치며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 있는 듯하다. 우리 팝문화에서 유럽적인 것, 아시아적인 것, 요컨대 비미국적인 것이 거세되는 것과 동시에 윌리엄과 제임스와 존과 헨리, 곧 수많은 프랭크 시내트라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온 것이다.

40대 중반인 필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며 60년대 중후반 무수히 본 미국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하와이에서 열린 엘비스 프레슬리의 재기무대를 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그리고 붉은 머플러로 땀을 닦아 소녀팬들에게 던지는 엘비스를 흉내내는 남진을 보고 웃었다 (남진의 그건 정말 우스운 짓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래 '우수' 나 '가슴아프게' 는 나의 애창곡이다) .70년대부터 불러댄 그룹 CCR와 비지스의 노래는 지겹고도 정다운 친구가 돼있다.

미국문화 편식증을 문화제국주의 탓으로 돌리는 건 진부하고 비겁하다. 90년대 들어 지금까지 중국.대만.일본과 이란 등의 영화들이 베니스와 베를린, 그리고 칸에서 기세를 올리는 것을 우리는 구경만 하고 있다.

왕자웨이 (王家衛) 라는 홍콩의 괴짜를 모방한 것도, 일본노래를 표절하는 것도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문화로 훈련된 우리의 식민적 문화 수용에 뿌리가 가 닿을 듯하다. 그렇다면 중.고생에서 대학생까지 등마다 붙어 있는 잔스포츠, 이스트팩 가방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붙어 있는 프랭크 시내트라들이 아닌가. 이제는 미국 문화든 뭐든 식민적 소비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함께 영결해야 할 때가 왔다.

이헌익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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