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조차 애를 먹일 만큼 영어의 어휘는 방대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공식 게재된 단어만 60만 개다. 프랑스어(10만 개)나 스페인어(25만 개)는 비교도 안 된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해 몸집을 불려온 결과다. ‘영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초서는 빈약하기 짝이 없던 영어를 풍성하게 만든 선구자로 꼽힌다. 14세기 당시 영어에 없던 말을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에서 슬쩍 빌려왔다. secret(비밀)·policy(정책)·galaxy(은하) 등 그렇게 만든 신조어가 1000개도 넘는다.
요즘은 98분에 한 개씩 새 단어가 나온다고 한다. 특수 소프트웨어로 신조어 동향을 파악해온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GLM)’란 단체는 급기야 10일 100만 번째 영어 단어가 탄생했다고 발표했다. 차세대 인터넷을 뜻하는 Web(웹) 2.0이다. sexting(야한 문자·e-메일 보내기)이나 noob(신참) 등이 간발의 차이로 영예를 놓쳤다. ‘여러 나라에서 같은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 말’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단다.
중국(3억 명)과 인도(3억5000만 명)를 포함해 전 세계 15억 명 이상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걸 고려하면 당연한 조건이다. 라틴어와 프랑스어가 그랬듯 영어는 이제 영미권만의 언어가 아닌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세계어)이니 말이다.
영어의 득세엔 그늘도 따른다. 영어의 확산으로 각국의 토착 언어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게 데이비드 크리스털 교수(영국 방고르대) 등 언어학자들의 지적이다. 2100년쯤이면 현존하는 7000개 언어가 수백 개로 줄어들 거란 암울한 예측도 있다. 영어 공부 열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도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류 덕에 한국어를 쓰는 해외 인구가 늘고 있는 게 그나마 희망이라 해야 할까.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