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상품은 뛰어나지만 주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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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명희(사진) 신세계 회장이 지난달 20일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을 찾았다. 사흘 동안 매장 곳곳을 둘러본 그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최고의 백화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일본 방송에서 센텀시티를 한국의 관광명소로 소개한다고 들었다. 부산 시민들도 명소로 자랑스러워한다고 해 기뻤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그러나 격려에만 그치지 않았다. 임직원들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 줬다. 그는 “우리나라 백화점은 의(衣)·식(食)·주(住) 중에 ‘의’와 ‘식’ 관련 상품은 뛰어나지만 ‘주’ 관련 상품인 생활용품 구성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활 관련 상품 개발에 신경을 써 신세계가 주도해 보자”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구체적인 외국 백화점을 거명하며 배울 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류는 일본 이세탄백화점을 늘 염두에 두라. 조명은 파리의 봉마르셰백화점이 우수하니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이세탄은 기본 사이즈 외에 아주 작거나 매우 큰 사이즈의 의류매장을 따로 두는 등 고객을 세분화해 관리한다. 지하주차장을 둘러본 뒤에는 “주차장 끝이 보이게 설계하고 차량 간격도 넓어 고객 편의를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주차장은 차량을 센서가 인식해 천장에 달린 발광다이오드(LED) 장치를 통해 주차된 곳은 빨간색으로, 빈 곳은 초록색으로 표시해 준다.

이 회장은 좀처럼 공식 행사에 나타나지 않는다. 1984년 백화점 2호점인 서울 영등포점 개점 때 부친인 고 이병철 회장을 수행한 데 이어 2007년 2월 서울 충무로 본관을 명품관으로 재개장하는 자리에 참석한 정도다.

그렇지만 굵직한 원 포인트 레슨은 종종 해 왔다. 본점 리뉴얼 공사가 시작된 2002년, 이 회장은 “백화점이 살아남으려면 상품 구성을 차별화해야 한다”며 관련 분야 육성을 지시했다. 한 임원은 “명품 브랜드를 파는 것은 성장기에는 효과가 있지만 이미 포화상태이고, 백화점 간 시설 경쟁도 끝난 만큼 그 백화점만의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후 서울 강남점이나 본점에는 트리니티(해외 명품 디자이너), 블루핏(프리미엄 청바지), 슈컬렉션(여성 명품 구두) 같은 고급 편집매장이 속속 등장했다. 2005년엔 이세탄백화점을 벤치마킹하라며 ‘이세탄 사람들’ ‘이세탄 같은 서비스는 이렇게 한다’란 자료를 만들어 임직원들에게 읽게 했다. 이세탄은 85년 디자이너·캐릭터 의류 편집매장을 최초로 열어 모녀가 함께 쇼핑하는 문화를 탄생시켰다. 그런 고객 중심 노하우를 배우라는 것이었다.

센텀시티점은 요즘 일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상품 정보와 이벤트를 휴대전화로 안내하는 서비스를 구축 중이다. 이 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서울에도 이런 점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땅값이 비싸서…”라고 혼잣말처럼 했다고 한다. 여운을 남기는 원 포인트 레슨인 셈이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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