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제위기와 가정]이혼 급증세…IMF 탓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느닷없이 들이닥친 IMF한파가 가정에 빛과 그림자를 함께 던져주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있게 마련인 크고 작은 문제들이 경제위기로 곪아터져 이혼 등 가족해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는가 하면 그동안 흥청거려 걱정을 자아냈던 청소년들의 씀씀이는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경제위기가 가져온 가정의 명암 (明暗) 을 살펴본다.

"결혼 20년동안 여자 관계가 복잡한 남편이 속을 썩여 왔지만 그런대로 참아 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빚쟁이를 피해 도망가자 나를 이렇게 만든 남편이 정말 밉고 자살충동도 자주 느껴요. 아이들이 결혼하면 이혼할 생각입니다. "

(불광동 50대 초반의 주부) IMF체제 이후 한국여성민우회 산하 가족과 성상담소에 들어온 상담 내용이다. 간혹 고민을 나눠 부부사이가 더 가까워졌다는 긍정적인 얘기도 있지만 최근 발표되고 있는 각종 통계는 경제위기로 가족해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올 1분기 상담내용을 분석한 결과 1천8백81건 가운데 이혼상담이 1천1백41건으로 60.7%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 (51.1%) 보다 9.6%P가 증가한 것. 이혼사유로 외도와 가출은 지난해보다 줄어들고 있지만 구타 (28.9%→33.7%) 와 '기타사유' (40.8%→43%) 는 늘어났다. 특히 '기타 사유' 가운데 경제갈등.생활무능력.빚.도박.무책임등 경제관련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62.4%에서 올해는 81.5%로 크게 늘어 경제문제로 가정에 금이 가고 있음을 드러냈다.

서울 여성의 전화가 최근 발표한 올 1분기 상담결과에서도 가정폭력이 31% (5백30건) 을 차지했는데 이 가운데 89명이 'IMF이후 구타가 더 심해졌다' 고 호소했다. 경제위기와 관련된 상담도 1분기동안만 1백88건으로 지난해동안 1백39건이었던데 비해 크게 늘어났다.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 (卞化順)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가족파탄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배우자의 가정폭력, 생활무기력 등 다른 가족 문제가 경제위기로 곪아 터진 것" 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성상담소는 ▶ '남편은 가계부양자, 아내는 가사전담자' 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것 ▶아내는 남편과 가정 경제및 가사의 책임을 함께 하고 남편은 이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날 것 ▶서로의 불만은 쌓아두지 말고 바로 표현하고 절대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위축시키는 표현을 쓰지 말 것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격려와 애정 표현을 자주할것 ▶실직은 개인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알고 자신감을 갖자 등을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부부10계명' 으로 제시했다.

김창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