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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국경없는 통신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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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 1. 지난달 11일 찾은 영국 런던 템스강 인근의 BT센터. 근처 세인트폴 성당과 대조되는 이 현대식 건물 1층 로비에는 지구촌 곳곳 BT의 활동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형 보드가 걸려 있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아프리카·아시아·미주까지 각 대륙, 170개국에서의 사업현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40%가 이 회사 고객이다. 웬디 시카모어 매니저는 “BT는 더이상 ‘텔코(Telco·전화 회사)’가 아니라 첨단 컨설팅을 하는 ‘소프트코(Softco·소프트웨어 회사)’”라고 강조했다.

# 2. 같은 달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부촌인 파사데나의 AT&T 캘리포니아 지사. 1층 쇼룸의 큼지막한 고화질 인터넷TV(IPTV) ‘유버스’에서 스포츠 생방송 등 다양한 동영상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유버스는 셋톱박스 하나로 최대 8대의 TV에서 각각 다른 채널을 보는 첨단 IPTV다. 호세 파디야 매니저는 “1년 만에 미국 전역에서 130만 가입자를 확보했다”고 했다.

해외 유수의 통신회사들은 지구촌을 한데 묶는 ‘글로벌 통신·방송 융합 벨트’의 야망을 키운다. 영국 BT는 ‘정보통신기술(ICT) 종합 컨설팅’이라는 독특한 사업모델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옛 영화를 재현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인 ‘BT센터’ 야경. 세계 각지 방송사들과의 계약에 따라 전파를 송출하는 ‘글로벌 BT’의 상징이다. 영국 내 전화 서비스를 하는 공기업으로 출발한 BT는 2000년대 초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과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종합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로 거듭났다. [BT 제공]

미국 AT&T는 본업을 박차고 방송·통신의 컨버전스(융합)와 디지털 미디어라는 새 업을 찾았다. 스페인 텔레포니카는 뛰어난 안목의 해외 인수합병(M&A) 전략을 구사해 열강들 틈에서 세계 2위 통신회사로 우뚝 섰다. 20여 개국에 진출해 매출의 64%를 해외에서 거둔다. 프랑스텔레콤(FT)은 ‘오렌지’브랜드를 무기로 20여 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로 뛰쳐나가고 업종을 넘나들다 보니 지구촌 곳곳이 전쟁터다. ‘세계 통신대전’의 시대다.

우리는 어떤가. 양대 간판기업 KT·SK텔레콤의 해외 매출 비중은 1%도 안 된다. 이달 초 KT-KTF 합병으로 촉발된 업계 경쟁도 기본적으로 내수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만난 디미트리 입실란티 통신정책국장은 “한국은 멕시코·캐나다와 함께 통신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아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방석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은 “통신·방송 할 것 없이 포화상태에 이른 내수시장에서 제로섬 게임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고, 디지털 융합으로 변신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원호(일본·베트남·우즈베키스탄), 이나리(영국·프랑스·스페인)
김창우(미국), 김원배(요르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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