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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이윽고 선장실에서 난데없는 사이렌 소리가 짧게 흘러 나왔다. 곱지 않은 파도를 헤치며 두 시간 남짓 달려온 오징어 어장은 울릉도 근해였다.

사이렌 소리가 난 것은 어장에 당도했다는 선장의 신호였다. 얼추 멀미를 가라앉힌 봉환은 변씨에게 이끌려 갑판 위로 나섰다.

몸서리치는 추위만 살갗을 파고드는 바다에는 어느덧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다는 온통 짓붉은 노을로 가득 차 올라 넘실거리고 있었다.

청일호보다 서둘러 어장에 도착한 채낚기 어선 몇 척은 벌써부터 집어등을 켜고 조업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이 선장은 선체를 한 바퀴 휘그르르 선회시키는가 하였더니, 고물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정면으로 마주보도록 유도하였다.

어느새 방한모와 방한복에 우비옷까지 겹쳐 입은 어부들은 이물간으로 몰려가 물돛을 내리느라 분주했다. 물 속으로 들어가면 낙하산 모양으로 펼쳐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물돛은 심한 바닷바람에도 선체가 심하게 떠밀리거나 뒤뚱거리지 않도록 버텨주고, 조업시간 동안 선체와 낚싯줄이 같은 속도로 흘러가면서 오징어들 어군 위에 머물러 있게 조절한다. 드디어 파도에 떠밀려 앞뒤로 키질하는 선체의 너울거림을 따라 뱃전가로 능숙하게 몸을 붙이고 자리잡은 어부들은 반창고를 꺼내 손가락을 겹겹으로 감고 자새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변씨는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한 마디 없이 봉환이가 자새질하기에 불편이 없도록 생선상자를 끌어다가 앉을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 변씨는 봉환의 옆에 자리를 잡고 자새를 설치하고난 뒤 담배에 불을 댕겨 건네주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여러 번 트림이 나오는가 하였더니 다행스럽게도 속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바다는 금방 어두워졌다.

근처에 떠 있는 어선들의 집어등 불빛이 선명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청일호에도 집어등이 켜졌고, 때를 같이해서 어부들은 슬금슬금 자새질을 시작했다.

기관실의 엔진은 여전히 가동되고 있었지만, 선체는 파도만 타고 있을 뿐 앞으로 나가지는 않았다.스크루와 연결시킨 구동축을 빼놓았기 때문이었다.

동력은 오직 오징어를 잡을 동안 집어 등을 밝히기 위해서만 사용되었다. 선장은 드디어 동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집어등의 촉광을 한껏 높여 오징어떼를 유인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말 한 마디 없던 변씨는 밝기가 선명해지고 있는 집어등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목청을 높였다. "씨발, 하찮은 채낚기 어선이지만,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신선놀음이야. 옛날에는 저렇게 째지게 밝은 집어등은 상상도 못했지. 그땐 횃불 하나로 오징어떼를 모았다구. 조금 나았다는 게 석유등이었지. 석유등만 해도 궁상스럽기가 짝이 없었어. 오징어가 불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체에 불을 켜야 오징어를 잡지만, 불을 켜두면 오징어들이 좋아하는 새우들도 같이 모여들기 때문에 오징어가 잡힌다는 이치를 알고는 있어. 한낮에는 오징어들이 수심 백미터 이하에서 놀고 있다가 바다에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이 되면, 이것들이 먹을 것을 찾아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게야. 불빛이 있고 새우가 있고 저도 먹을 것을 찾아나서는 궁합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게지. " 뱃멀미가 덧날까 싶어 두려웠던 봉환은 대꾸는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선체가 바람에 떠밀려서 집어등이 자네 앞으로 정면으로 비출 땐 자새질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려도 괜찮아. 저것들이 불빛을 좋아해서 불빛에 홀리긴 하지만, 너무 밝은 건 또 싫어해서 불빛이 정면으로 오면, 배밑창 그늘로 숨어버리거든. 저것들이 배밑창으로 숨어버릴 때가 잘 잡힐 때여. 오징어 낚시에는 이늘이 없지만, 형광물질로 되어 있어서 이게 물 속으로 들어가서도 집어등에 반사되어 이상한 빛을 내게 마련이야. 오징어란 놈은 호기심이 많아서 신기한 것은 그냥 두고 못보는 급한 성미야. 이게 뭔가 해서 민들레꽃씨처럼 생긴 낚시를 다리로 끌어안아버리지. 그때 잡아채는 게 바로 채낚기야.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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