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과학축전 지난 2∼10일 개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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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5월5일 오전. 호주의 수도 캔버라 중심가에 위치한 콘벤션센터 2층 한켠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살자는 남자 마네킹. 피살자주위에 남녀 고교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수사관은 선혈이 낭자한 마네킹을 앞에 놓고 학생들에게 혈흔속의 유전자 분석등을 시연해 보이느라 여념이 없다. 살인현장을 담은 무인카메라에는 적외선 필터등이 달려있어 흉기의 실제 색깔과 비디오상의 색이 다를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지난 4일 시드니의 파워하우스 박물관. 시내에 산다는 4살짜리 디온 즐라소스는 엄마와 함께 '영화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영사기를 천천히 돌릴 땐 꼼짝않던 필름속의 주인공이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자 TV만화영화의 주인공처럼 움직였기 때문. 6일 호주 퀘스타콘 과학관 2층의 비행원리 코너. 한 초등학생이 비행날개속에 손을 집어넣어 이리저리 살살 흔들어본다.

날개는 방향을 약간만 틀어도 위로 뜨거나 밑으로 가라앉았다. 꼬마는 유체역학을 설명하는 '베르누이 정리' 도 직접 실험해보니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다.

지난 2~10일 호주 전국규모로 뜨겁게 달아오른 '과학축전' 의 한 모습이다.국내는 어떨까. 12일 서울 국립중앙과학관 탐구관. 경주에서 올라온 한 중학생은 '비행원리' 코너앞에서 한 차례 버튼을 누르더니 이내 심드렁한채 돌아선다.

두꺼운 유리창 안쪽에 설치된 비행기의 날개는 버튼을 누르자 한차례 뜨다 가라앉을 뿐이었다. 호주는 지금 과학대중화를 내세우며 전방위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호주 TV방송사인 ABC는 과학축전기간 내내 하루 평균 1시간 남짓 과학프로그램을 특별편성하고, 캔버라타임즈등은 매일 '오늘의 과학축제' 라는 란을 신설, 수도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과학활동을 소개했다. 호주의 '과학대중화 혁명' 은 '호주과학의 위기' 인식의 발로다.

호주국립대의 존 샌드맨석좌교수는 "고등학교의 실력있는 학생들이 대개 변호사나 사업가만 꿈꾼다. 대학 자연계 진학생들의 입학점수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고 걱정했다.

파워하우스 박물관의 제시쇼어박사는 "과학하기를 게을리하면 나라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질수 있다. 최근 대중들에게 과학을 친근하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과학자들의 책임이라는 공감대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고 말했다.

최근 이 나라의 과학관이 눈으로 보여주는 단순 전시물을 철폐하고, 모두 직접 해보고 느끼는 이른바 '체험 과학' 형태로 전시체계를 바꾼 것도 이런 이유. "과학을 모르는 사람만 오라" 는 과학관측의 자신감이나, "들어올 땐 예술로 알고 왔는데 나갈 때 보니 과학이더라" 는 관람객들의 평가도 체험과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립중앙과학관과 10여개의 과학교육원에 예외없이 수백만~수천만원에 이르는 천체망원경이 있지만 상당수는 덮개도 벗겨져 있지 않다. 천문학계의 관계자는 "원장이 망원경이 망가질까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실정" 이라고 개탄했다.

호주는 인구로만 따지면 1천8백만명의 '크지 않은' 국가. 하지만 노벨과학상 수상자만도 4명이나 배출했다.

또 호주 정부 역시 최근 '과학을 알자' 라는 프로그램을 신설, 정부의 1개국 (局) 이 이를 전담토록하는 등 민간에 이어 대중과학을 들고 나섰다. 우리 과학자들이 "지난 4월 과학의 달조차 과학과 대중은 여전히 물과 기름사이였다" 는 자조적인 한탄을 하고 있는 동안 호주의 과학자들은 "어떻게하면 어렵고 딱딱한 과학이 대중속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을 보여주었다.

시드니.캔버라.대덕단지 = 김창엽 기자

〈atm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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