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핵파문 인도 루피화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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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미.일 등 선진국이 핵실험을 강행한 인도에 대해 강도 높은 경제제재 방침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루피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인도 경제에 파문이 일고 있다. 봄베이 외환시장에서는 지난 13일 루피화 투매현상이 벌어지면서 미 달러에 대한 환율이 전날보다 1.9% 떨어진 달러당 40.525루피를 기록했다.

이는 루피화 가치가 올들어 최저치였던 달러당 40.25루피 (1월15일) 를 경신한 것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은행 봄베이지사의 외환딜러 미히르 스리바스타바는 "환율 폭락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히 팽배하고 있다" 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인도 정부는 달러 사재기가 본격화될 경우 2백95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곧바로 환투기를 잠재우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이는 어림도 없는 소리' 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선진국들의 제재조치가 본격화될 경우 인도는 현재 추진 중인 경제구조 개혁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됨은 물론 제재 강도에 따라 인도네시아에 못지 않은 금융위기 가능성도 있다고 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이미 1억4천2백만달러에 이르는 97년도 대 인도 직접 차관 제공을 중지시켰다.

인도 기업.금융기관에 대한 각종 간접지원 계획도 백지화할 방침이다. 미 상무부는 또 미 기업들에 대한 대 인도 수출자금 지원 및 신용보증을 중단했다.

영국.프랑스 등은 아직 구체적 제재방안을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인도의 핵실험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제 금융기구들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이 행동에 나섬으로써 지금까지 인도 지원에 우호적이었던 국제 기구들의 입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의 한 관계자는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구들은 올해 인도에 38억달러에 이르는 각종 차관을 제공할 계획이었으나 성사가 불투명하게 됐다" 고 전했다. 이런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인도 정부는 겉으론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제 제재를 가하면 인도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제멋대로 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 국내에 진출한 선진국 기업들에 그동안 미뤄왔던 각종 인허가를 내주는 등 파장을 축소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번주 들어 인도 정부는 미 펠프스 닷지사에 비하르 북부지방의 광물채취 사업권을 내주었다. 또 미 코젠트릭사 등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건의 발전사업도 곧 허가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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