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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강한 여자 예쁜 남자 감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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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막장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방영되던 무렵, 한 출판사 대표가 퇴근하니 식구들이 TV에 코 박고 있더란다. “왜 그런 드라마를?”하며 핀잔 줬다가 “세상모르는 소리”라며 된통 당했다. “당신이 그렇게 사니까 책장사도 그 모양 아니냐?”는 공격을 받은 것이다. 부인의 말과 달리 그는 성공한 출판사 대표인데, 이상화의 신간 『여자에게 다 줘라』에 요즘 TV 남녀풍속이 일목요연하다.

“한동안 악녀들이 판쳤지만 요즘에는 한층 독해졌다. 자기 뜻에 어긋나는 아들을 감금하고, 경호원 시켜 며느리의 뒷조사를 하고, 소름 돋도록 아들과 며느리를 몰아붙인다. 반면 남편·아들 대부분은 찌질이다. ‘아내의 유혹’의 정교빈(변우민)이 그렇고, 오래 전 ‘조강지처 클럽’의 한원수(안내상), ‘워킹 맘’의 박재성(봉태규)등이 남자 망신시키는 유형이다.”(20쪽)

『여자에게 다 줘라』는 알파걸 찬양, 못난 남성 비판이다. 예전 ‘TV 손자병법’ 으로 이름 날렸던 방송작가 이상화는 물론 남자인데, 그는 ‘강한 여자, 예쁜 남자’ 트렌드를 모계사회 복귀 징후로 푼다. 그 위에서 새로운 남녀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마크 펜의 꽤나 매력적인 책 『마이크로 트렌드』를 봐도 방향은 그쪽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지구촌 흐름 즉 ‘1% 트렌드’만을 모아놓은 이 책에 따르면 요즘 미국인들은 아예 남자임을 포기했다.

멀쩡한 ‘boy’를 ‘boi’로, ‘girl’를 ‘grrl’로 바꿔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남녀 구분 자체를 없애고 중성화시키는 것이다. 세련된 미국식 꽃미남인 메트로 섹슈얼만해도 그렇다. 그들은 고급향수 오데꼴롱을 뿌리고, 종아리 털까지 깔끔하게 민다. 반면 여자들은 드세졌다. 성적 욕망도 거침없다. 예전 잘 나가는 남자들이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를 챙기며 희희낙락했다면, 드라마 ‘섹스 앤 시티’의 사만다는 젊은 섹시남, 즉 토이보이(toy-boy)를 꿰차고 놀지 않던가.

참고로 ‘toy-boy’는 속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물론 일부 흐름을 극화시킨 경우이겠지만, 알파 걸의 등장은 전 지구적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 여성 상원의원은 1명이었으나 2007년 현재 17명이다. 여성변호사는 30년 새 29배 증가했고,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여자 임원이 16%다. 여성 복권은 문명사적 변화 징후라는데 나도 한 표를 던진다.

이상화의 말대로 청동기문명 이래로 빼앗겼던 여성권력을 되찾는 흐름일까? 이화여대 교수 최재천이 쓴 책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를 포함해 사회생물학 분야 저술들도 그쪽을 지지하고, 『미래에서 온 편지』의 저자 현경도 새 여성신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런 메가트렌드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요즘 출판물과 지적 논의로만 보자면, ‘아마조네스 문명’은 대세는 대세다. 거부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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