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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살인범' 검거] 사건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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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유씨가 한 만화작가의 여성 캐릭터를 모방해 그린 그림. [김성룡 기자]

18일 범행 현장검증은 충격을 받은 주민들의 웅성거림으로 뒤덮였다. 수사 도중 진술 번복과 간질 증세로 경찰을 혼란스럽게 했던 유씨는 이날 자포자기한 듯 말없이 범행 현장을 가리켰다.

◇암매장 현장=피해자 10명의 시신이 암매장된 서울 봉원동 봉원사 일대의 현장검증은 오전 9시40분 시작됐다.

유씨는 하늘색 마스크와 검정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오전 11시20분쯤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문 채 매장 현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현장검증을 하러 경찰서를 출발하기 앞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 맞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땅을 파들어가자 봉원사 주차장 밑 가파른 계곡 주변 20m 반경 내에서 10구의 시신이 차례로 발굴됐다. 시신들은 크게 폭 2m의 계곡물을 사이에 두고 세 군데로 나뉘어 30~40cm 깊이의 구덩이에 한 구씩 묻혀 있었다. 처음 발견된 7구는 최근에 매장된 듯 비교적 상태가 양호했다. 그러나 계곡물 건너편에서 발굴된 2구는 심하게 부패돼 뼈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 한 구는 개울 오른쪽 아카시아 숲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들이 각각 10~18개의 토막으로 잘린 상태였다"고 전했다. 주민 이모(61.여)씨는 "약수를 뜨러 매일 수백명이 오가는 뒷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말끔한 사건 현장=현장검증이 진행된 유씨의 원룸은 살인자의 방이라고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깨끗하고 잘 정돈된 상태였다. 4층 건물에 들어 있는 6평 남짓한 유씨의 방에는 무차별 연쇄 살인을 다룬 범죄 영화 '공공의 적' 등 DVD와 음악 CD가 수십장 발견됐다.

벽 한쪽의 책꽂이에는 만화책.잡지.스크랩에 이용했던 노트와 수첩 등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노트에 남아 있는 '사진 속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자작시에서는 "사진 속의 어머니는 가족 모두를 껴안고 계셨습니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A4 용지 크기의 수첩에는 부동산 정보, 실내 인테리어, 여행, 성형 등으로 주제를 나눠 주제별로 신문과 잡지 등에서 오린 기사나 광고들이 깔끔하게 붙여져 있었다.

노트 두 권에는 총기나 칼, 공구, 성인 사이트 등과 관련된 기사가 스크랩돼 있었으며 컴퓨터 공부를 한 흔적이 엿보였다.

수첩과 노트의 스크랩 기사나 광고 밑에는 유씨가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연락처들이 적혀 있어 그의 치밀한 성격을 짐작케 했다.

또 클리어 파일에는 유씨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여자 연예인 그림과 여자 누드를 그린 만화 등이 꽂혀 있었다. 만화가 뺨칠 만한 상당한 수준의 솜씨로 그가 '여자'라는 주제에 상당한 집착을 보이고 있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 책꽂이에 꽂힌 잡지도 대부분 여성잡지였다.

지난해 6월에 딴 한자실력 2급 자격증도 나왔다. 찬장 위에는 라면 50여 봉지와 계란 두 판 등이 비축돼 있었다.

한편 이웃주민들은 경악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유씨 바로 옆 방에 살았던 A씨는 "한밤 중에 '윙윙'하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전동칫솔 소리라고 생각했다"며 "오전 1~2시에 '우당탕'소리와 싸우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층에 사는 B씨도 "'유씨가 이사온 뒤로 수도세가 많이 나온다'는 주인 아주머니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임미진.이경용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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