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로비스트와 해외홍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며칠 전 미국TV에서는 승용차의 강도 (剛度) 테스트를 저녁 뉴스시간에 비쳐주었다. 로봇이 운전대를 잡은 차들이 달려와 콘크리트 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어떤 차가 얼마나 찌그러드는가를 보여주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미국.독일.일본차가 차례로 나와 벽치기를 했지만 운전석은 멀쩡했다.

한데 맨 나중에 나온 차는 마치 종이상자마냥 납작하게 구겨졌다. 박살난 차를 보고 리포터가 빙긋 웃으며 한다는 말이 "이 차는 한국에서 온 것 (기아 세피아) 입니다. " 비아그라처럼 우리를 단단히 세워줄 '메이드 인 코리아' 는 없는가.

삼성전자가 내놓은 차세대 기억장치 2백56메가D램? 또 있다.

"사형대도 박차고 일어서는 슈퍼맨, 그 지도자가 민주주의와 경제회생을 이끄는 나라, 믿고 투자하세요.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국제광고 출연에 긍정적이라니 이같은 광고가 지구촌에 비칠 날이 멀지 않을 성싶다.

정부는 외교진용을 새로 짜고 있다. 워싱턴에 미국 고관 출신의 홍보 로비스트도 포진 (布陣) 시키리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유능한 로비스트와 홍보요원이 뛰어도 콘크리트 벽에 으스러지는 국가 이미지처럼 본국에서 악재 (惡材)가 쏟아지면 공염불이다. 잘 만든 물건, 좋은 서비스보다 나은 외교관은 없다.

거리에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나는 나라는 세계가 등을 돌린다. '가장 살기 불편한 나라' '가장 가보고 싶지 않은 나라' 로 찍히는데야 홍보비를 쏟아 얼굴에 분칠을 해도 예뻐 보일리 없다.

둘째로 한국 홍보의 문제는 홍보부족이 아니라 과잉홍보에 있다. 빚덩이는 가려진 채 올림픽과 월드컵나라로 외형국력에만 떠밀려 선진 클럽가입을 서둘렀지만 실물보다 과대포장된 것이 들통나자 투자자들이 빠져나간 것이다.

외교첨병 (尖兵) 들이 계절의 변화에 아둔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국대사가 경제통으로 바뀌는데도 변화를 읽지 못했다.

외교가 문화와 경제로 옷을 갈아입는데 안보 의전외교라는 구시대의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유엔 안보리 의장국이던 우리 대사는 브라질대사로부터 "77그룹 (후진국 빈자클럽)에 귀국이 가입신청을 하면 즉시 받아주겠다" 는 농담 아닌 수모를 겪어야 했다.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합치는 데서 보듯 대륙간 메가딜 시대에 국가위세외교는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가.

"미국회사 독일회사는 없다. 오직 성공한 회사와 실패한 회사가 있을 뿐" 이라는 합작의 변 (辯) 을 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워싱턴 로비의 전략문제다. 홍보의 방향과 전략개발은 몸값 비싼 로비스트를 잡는 일보다 중요하다.

저번 대미 (對美) 자동차협상때 우리끼리 협상주도권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였지만 기관철학의 차이가 있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같은 통상문제를 놓고도 백악관과 국무.상무부의 생각이 다르다.

성패는 그같은 차이점을 얼마나 파고드느냐에 있다.서로 이해가 다른 이익집단의 특수이익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인맥 (人脈) 줄대기보다 전문성과 다양성을 요한다.우리가 많이 사주는 곡물과 무기수입선을 로비 지렛대로 못쓸 이유가 없다.

일본자동차 로비는 세율에 걸리면 소형트럭이 세단으로 바뀌고, 환경규제로 걸면 큰 트럭으로 둔갑해 빠져나갔다. 관세보복의 칼을 빼면 전국의 딜러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부품공장 하나를 세워도 짐짓 주지사를 여럿 만난다.허탕을 친 지사는 다음을 노리고 로비의 포로가 된다.

우리는 박동선 (朴東宣) 사건때 그토록 데었는데도 워싱턴 중심 사고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보다 의회를, 워싱턴보다 지방저변 (grassroots)에 접근해야 한다.

'깅그리치 혁명' 으로 워싱턴 외국로비는 설 땅이 좁다. 정부는 의회에 약하지만 의회가 약한 곳은 선거구가 있는 지방이다.

우리기업의 지역상공회의소 참여와 교육.자선프로그램 기부행위에 감세혜택을 주어야 한다. 그래스루트를 파고드는 것은 워싱턴을 움직이는 지름길이다.

미국은 우리가 만든 자동차의 3분의1을 내다 팔아야 할 큰 시장이다.

최규장 재미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