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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일자리·녹색성장 … 공기업에 혁신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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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지방공항 안내대에서 일하는 50대 초반의 A씨.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공항들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의 최고위 간부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상사인 임원과 동료·부하직원들이 함께한 종합평가에서 이른바 ‘C- 플레이어’가 됐다. C- 플레이어란 능력과 업무 성과가 떨어지는 임직원을 일컫는 말. A씨는 보직에서 물러나 현장 안내 업무에 배치됐다. 이 회사에서는 지난해 고위 간부 10명이 A씨 같은 평가를 받았다. 그 중 한 명은 퇴직하고 9명은 A씨처럼 안내 일을 하면서 직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올 10월 이들을 재평가해 다시 보직을 줄지, 아니면 그만두게 할지를 결정한다. 이 회사가 인사 평가를 해 C- 플레이어를 골라낸 것은 이번이 처음. 입사한 뒤 시간이 지나면 정년까지 자동으로 직급과 월급이 오르던 것을 확 바꿨다.

일요일이었던 올 1월 11일 한국전력의 고위 간부 54명은 한밤중에 인사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강당으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강당에 모인 간부들에게 김쌍수(64) 사장이 임명장을 줬다. 보직이 정해진 것이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같이 일할 팀장을 직접 고르라고 했다. 강당엔 인사 자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컴퓨터 54대가 놓여 있었다. 팀장급들의 희망부서와 경력 등을 살펴 그날 밤 2시30분쯤 1019명 팀장이 정해졌다. 한전 측은 “예전 같으면 한 달 걸릴 간부 인사가 초고속으로 처리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팀장급 이상의 40%가 물갈이됐다.

공기업이 변하고 있다. 철저한 성과 위주 인사 시스템을 앞다퉈 도입하고, 효율을 올리는 데 힘을 쏟는 등 경영 혁신을 꾀하는 것. 한편으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고, 친환경적인 녹색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가꾸는 데 앞장서는 공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코레일은 지난달부터 부산발 서울행 KTX를 증편해 막차 시간을 늦췄다. 월~목 오후 9시25분, 금요일 9시50분이던 막차 시간을 월~금 오후 10시5분으로 조정했다. 정비작업을 효율화해 서울에 도착한 뒤 정비받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숨어 있던 40분’을 찾아 고객에게 돌려준 것이다.

‘공기업=철밥통’이란 등식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공기업들이 퇴출까지 하는 인사제도를 시행하고, 또 효율을 높이는 방편으로 정원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정원을 감독하는 129개 공공기관들은 올 들어 정원을 17만5000명에서 15만3000명으로 2만1000명(12%) 감축했다.

◆일자리 나누기=한국수자원공사는 올 4월 주부사원 600명을 채용했다. 6개월~1년간 장애인·치매노인 돌보기를 한다. 저소득층 주부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월급 60만원은 수자원공사가 이리저리 비용을 아껴 마련한 예산 35억원에서 준다. 앞서 올초 대한주택공사는 사원들의 복리후생비를 줄인 예산 40억원으로 주공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 1000명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줬다.

청년인턴 채용에도 적극적이다. 공공기관들은 올해 말까지 모두 1만2000명 청년인턴을 쓰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5월 말 현재 1만2186명을 채용해 이미 목표치를 넘어섰다. 청년인턴이 임시직이어서 보통 6개월 정도인 인턴 기간이 지나면 다시 청년 실업자를 쏟아낸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에너지관리공단이 최근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인턴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는 등 인턴제를 인재 채용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공공기관들이 나타나고 있다.

◆녹색성장 이끈다=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에서 이산화탄소(CO2) 배출 줄이기’를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고속도로의 교통 혼잡을 최대한 줄여 기름을 덜 쓰게 함으로써 CO2를 덜 뿜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개발에 나선 것이 지능형교통체계(ITS)다. ITS란 전국의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운전자에게 가장 빨리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도로공사는 ITS 시스템 같은 녹색사업에 올해부터 2012년까지 4년간 15조원을 투자한다. 이로 인해 일자리 25만개가 생길 것으로 도로공사는 예상했다. ITS를 통해 일자리 만들기인 ‘녹색 뉴딜’과 ‘녹색 성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한전과 함께 올해를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출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은 미국·프랑스 등에 이은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 그러나 아직 원전을 수출한 경험이 없다. 원전은 1기를 짓는 데 3조원 정도가 든다. 쏘나타 승용차 16만 대, 30만t급 대형 유조선 20척을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금액이다. 한수원 등이 원전 수출 의지를 불태우는 이유다. 한국은 현재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 수주를 놓고 프랑스·미국과 경합 중이다. 원전은 CO2를 뿜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녹색사업 분야의 하나로 꼽힌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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