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무엇이 두려워 기자회견 못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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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작금의 혼란 시국에는 지난해 쇠고기 촛불 사태와 비슷한 점들이 있다. 작년 사태는 정부의 협상 실수가 불씨를 제공했다. 불씨가 반(反)이명박 세력의 정서에 불을 붙였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크다는 비과학적 선동 바람이 불을 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심 무법·폭력 시위는 쇠고기 문제를 넘어 국정쇄신을 외쳤다. 이번 사태의 불씨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투신이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의 무리한 점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작지 않다. 역시 반이명박 정서에 불이 붙었다. 검찰 수사의 정당성과 수사 과정의 일부 무리를 혼동하는 비(非)논리성이 불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도심 점거 불법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며 국정쇄신 요구가 튀어나오고 있다. 두 사태에서 똑같이 TV의 자극적인 보도와 야당·시민단체 세력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

또 하나 비슷하게 전개되는 건 이 대통령의 대처 자세다. 지난해 사태 때 많은 국민은 협상 실수는 실수고 쇠고기 과학은 과학이니 대통령이 조속히 국민 앞에 나와 당당하게 설명해주길 바랐다. 그런 정공법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많은 이가 믿었다. 대통령은 그러나 쇠고기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이 돼서야 기자회견을 했다. 대통령은 재협상은 왜 안 되며 미국 정부의 안전성 보장을 어떻게 받았는지 설명했다. ‘고소영’ 인사실책을 인정하고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회견으로 불길이 다 잡히진 않았지만 합리적인 많은 국민이 정권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했던 건 사실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대통령은 오늘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가 있은 후 15일께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입장을 밝힌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20여 일 만이다. 시기적으로도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방법도 문제다. 라디오 연설 같은 일방적인 의사전달로는 민심을 둘러싼 안개를 걷어낼 수 없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국민과 주고받는 소통을 해야 한다. 전직 국가원수의 자살은 가슴 아픈 국가적 비극이지만 ‘정치보복이나 정치적 타살, 민주주의 후퇴’ 같은 주장은 터무니없음을 지적해야 한다. 검찰 수사가 왜 정당했으며 수사 과정의 무리에 대해선 어떤 개선을 강구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국민화합과 국정개혁으로 차분하게 승화시켜야지 지난해와 같은 불법 혼란 사태는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솔직하게 국정쇄신을 언급해야 한다. 정치발전을 향한 복안은 무엇인지, 화합의 정치는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 당정개편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부자편향 정권’이라는 주장을 논박하고 차제에 4대 강 살리기의 대운하 의혹 주장도 당당히 대처해야 한다. 그는 48.7%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무엇이 두려워 국민 앞에 나서길 주저하는가. 화려한 언변이 없어도 진정성만 있으면 국민은 그의 얘기를 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