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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캠퍼스 홈리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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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대는 지난 96년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서울대 50년사' 를 출간했다. 해방직후부터 X세대 등장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풍속사 (風俗史) 를 정리한 이 책은 50~60년대 서울 동숭동 시절을 '거지문화시대' 라고 이름 붙였다.

궁핍했던 그 시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 가운데는 하숙비가 없어 친구 하숙방을 전전하거나 아니면 학교 연구실 또는 서클 룸에서 기거하며 거지 아닌 거지로 살던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칫솔 하나가 유일한 무기였던 이들은 아침이면 수위실 옆 세면장에 모여 세수하고 이를 닦았기 때문에 '칫솔부대' 라는 별명이 붙었다.

60년대 중반 서울 문리대 불문학과 학생이었던 소설가 김동선은 자신의 체험기록 '나의 사랑 나의 대학' 에서 칫솔부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문리대는 낭인 (浪人) 들의 천국이었다.

칫솔 하나만 뒷주머니에 찔러넣고 동가식 서가숙하며 문학에 미치고 연극에 미치고 학문에 미친 사람들, 돈은 한푼도 없어 남에게서 얻어먹기 일쑤나 기는 전혀 죽지 않는 천성적인 낙천가들 - 이들이 바로 문리대 낭인들이다. " 검은색 물감 들인 군복에 찌그러진 군화 차림이 대부분이었던 문리대 낭인들은 입만 있으면 술을 마실 수 있었고, 커피도 외상으로 마셨다.

그들은 교정 (校庭) 을 자기집 정원으로 생각했다.

학교에서 잠자고 밥먹고 공부하고, 개중엔 더운 여름철이면 학교 분수대를 수영장으로 삼았던 친구도 있었다. 베토벤의 데스 마스크가 걸려 있던 학림다방은 또 다른 강의실이자 토론의 광장이었다.

세월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로부터 30년 넘게 세월이 흐른 요즘 대학가에 새로운 낭인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들은 낮엔 도서관에서 지내다 밤이 되면 경비원의 눈을 피해 학과 사무실이나 교실에 들어가 잠자리를 찾는다.

IMF 경제위기가 낳은 캠퍼스 홈리스들이다.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봐도 하늘의 별따기. 숙식만 해결해 주는 조건의 '입주과외' 를 찾아보지만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런 한편으로 일부 학생들의 과소비는 여전하다.대학가 주변은 밤마다 불야성 (不夜城) 이고, 자가용 자동차와 이동전화는 필수품이다.

온나라를 깊은 수렁속에 빠뜨린 IMF사태가 대학생 사회에까지 계층간 갈등의 깊은 골을 파고 있다는 사실에 또 다른 위기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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