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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책vs책] 남자여, 페미니스트가 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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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페미니즘
Feminism is for Everybody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백년 글사랑, 253쪽, 9800원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Goddesses in Everywoman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 외 옮김
또 하나의 문화, 346쪽, 7500원

재작년인가 미국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때 한 대학에서 강연회 겸 축제 행사가 있었는데 그녀는 환갑의 나이가 무색하게 젊고 아름다운 얼굴로 차분하면서도 유머 있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강연 후 한 여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페미니스트가 된 후 당신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는가?”그녀의 대답은 즉각적이고 간결했다. “페미니스트가 된 후 예뻐졌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아무도 내게 예쁘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요.”

내게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정신분석을 받은 일이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한 소설 속에 풀어 놓았는데 소설을 읽은 이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신분석을 받은 후 당신 생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그때마다 나는 반쯤 농담 삼아 이렇게 대답했다. “그 작업 이후 가는 곳마다 예뻐졌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어요.” (문득 속이 메슥거리는 분들께 죄송하다.)

이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놓는 기준은 ‘임상적으로 검증된 여성 미용 서적’의 자격으로서다. 아름다움은 외면을 가꾸는 게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를 말하면서도 아무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일러주지 않았던 바로 그 비결이 이 책들에 들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페미니즘도, 정신분석도 한 인간을 내면으로부터 변화시키는 소중한 기제이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페미니즘 서적 중에서 굳이 『행복한 페미니즘』을 꼽은 이유는 우선 이 책이 입문서로서 충실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를 호전적인 남성 혐오증 환자쯤으로 오해하는 남성들조차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쉽고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열정적으로, 온 힘을 다해, 페미니즘의 모든 국면을 점검하고 옹호하고 주장한다.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은 원제 ‘모든 이를 위한 페미니즘’처럼 페미니즘이 반(反)남성주의가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 자신들도 해방시켜 줄 희망이라는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리하지 않게 이론을 전개하고 천천히 독자를 설득하는 서술법도 편안하게 읽히는 미덕이다.

무수히 많은 여성 심리학 서적 중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꼽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인간의 성격 원형들을 보기 쉽게 분류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삶이 신화의 원형을 따르듯 인간의 성격에는 신화 속 인물의 원형이 간직돼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책에는 권력 지향적인 아테나 여신, 모성의 여신 데미테르, 순종적인 딸 페르세포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등 아홉 가지 여신 원형이 제시되고 있다. 모든 여성의 내면에는 이런 성격 원형들이 내재하며, 그 중 어떤 원형을 더 활성화시키는가가 그 사람의 중심 성격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표면적 성격 원형 밑에 억압돼 있는 다른 원형들을 해방시켜야만 활기차고 창조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30대 초반에는 내 성격이 80%의 아르테미스(영원한 처녀신)와 20%의 헤스티아(불의 신) 원형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다시 읽었을 때는 무어라 규정할 수조차 없을 만큼 다양한 면들이 인식돼 좀 놀랐다.

페미니즘이 어떻게 여성이 사회적 제도와 규율에 의해 자율성과 활기를 억압당해 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정신분석은 어떻게 한 인간이 내면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고착돼 자신의 감정과 자아 영역들을 억압하고 있는지를 다룬다. 물론 두 영역은 서로 중첩되기도 할 것이다. 두 학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그런 억압들을 풀어내고 주체적 개인으로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꾸려가도록 하는 것일 게다. 바로 거기서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가는 내면의 변화가 시작된다.

사실 이 책들은 남성들이 건강하고 멋있어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의 어깨에 부하한 가부장제의 의무를 벗어내고, 경쟁 사회에서 지나치게 억압한 자아의 여타 국면을 풀어 놓는 것은 틀림없이 건강의 첫걸음일 것이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검증된 사례를 접하지 못해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여름 휴가를 이용해 특별한 미용법으로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가꾸고자 계획한 분들께 이 책들을 권한다.

김형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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