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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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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
원제 Tatoo History: A Source Book
스티브 길버트 지음, 이순호 옮김
르네상스, 361쪽, 2만8000원

이 책을 안봐도 되는 사람=문신(文身)을 자기 몸에 장난치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그들에게 이 책은 당연히 관심 밖이다. 당신이 혹시 몇해 전 ‘반지의 제왕’ 안정환 선수의 문신 뒤풀이 모습에 대뜸 혀를 끌끌 찼었다면, 이 리뷰 역시 제치는 게 좋다. 팔뚝에 ‘혜원(부인 이름),사랑해’라는 문신을 자랑스레 드러낸 안정환의 뒤풀이, 2002년 월드컵 전후에 보디페인팅과 문신은 젊은이들의 코드로 등장했다.

이 책을 환영할 사람= 만화가 박재동, 영화배우 방은진 등 20여명은 타투(문신)법제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게 지난해 9월. 그랬더니 가수 DJ DOC과 신해철, 배우 류승범,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 등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문신을 허(許)하라!”는 거다. 그런 주장에 필이 꽂혔다면 이 책을 환영할 것이다. 해수욕장에서 딸과 함께 스티커 문신을 해보셨다고?

하여 이제부터 들여다보는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신 역사의 만화경. 5000년 전의 미라에 새겨진 문신에서부터 유럽 탐험가들이 발견한 폴리네시아의 문신, 일본 문신, 유럽과 미국 최초의 문신가들, 문신을 한 영국 왕족, 문신 기계의 발명, 현대 문신의 선구자인 서커스단 사람들의 문신까지를 포괄한다. 따라서 다소 산만한 게 문제다. 그건 저자 한 사람의 체계적 저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신에 대한 역사가·언론인·인류학자들의 연구 기록과 에세이가 섞여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무시 못하는 것은 문신은 더 이상 “치기스러운 장난”이기는 커녕 “규격화된 몸으로부터의 해방”의 징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문신은 과연 충성 혹은 종교적 헌신의 상징이었다. 때론 전투의 용맹을 뜻했고, 성적 유혹이기도 했고, 범죄자나 노예·추방자의 표식이었다. 이 문신에 담겨 있는 역사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와 현대의 펑크적 동향은 문신에 대한 괜한 혐오감이 편견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신하면 조폭이나 병역기피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그건 일본 야쿠자의 영향 때문이다. 야쿠자들은 용기와 의리의 증거로 18세기 중반 이후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다.

이런 정보를 전해주는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를 값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한국어판 보론(補論)’. 고려대 조현설 교수의 글 ‘문신 금기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단상’은 이 책에 거의 언급 안된 한국 문신의 역사를 너끈하게 메워주는데 글의 완성도 역시 높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문신을 터부시하게 된 배경을 유교문화의 영향, 혹은 중화주의의 등장으로 보고 있다.

본래 문신은 고대 중국 은(殷)시대의 습속. 은나라는 갑골문을 썼고 현재 한자의 ‘글월 문(文)’이란 글자부터 ‘문신을 한 사람’을 형상화한 상형문자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인문주의를 표방했던 주나라가 은 시절의 습속을 전면 부정하면서 문신 역시 동이(東夷)를 포함한 오랑캐의 짓으로 매도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균형 잡힌 조 교수의 글인데 이 책 전체의 관점과 통한다.

“사실 문신은 인류사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지우려고 했던 많은 원시 기억의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근대를 통과하면서 돌아온 문신이란 인류가 부정하려고 했던 바로 그 원시문화가 원천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문신의 귀환이란 중세적 제도가 만들어놓은 ’규격화된 몸‘으로부터 풀려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353쪽)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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