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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땅 십승지를 가다]8.무주군 무풍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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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북한의 삼수.갑산과 남한의 무주 (茂朱) 구천동은 오지 (奧地) 의 대명사다. 세상 일에 어두운 사람을 두고 "무주 구천동에서 왔나" 라고 할 정도로 무주라는 지명은 속세와 동떨어진 곳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무주다. 97년 동계유니버사드 대회가 열려 세계에 그 이름이 알려졌다. 그보다 앞서 지난 75년 덕유산 일대가 국립공원이 되면서 무주 또한 이름난 휴양지로 바뀌었다.

정감록 등 비결서는 무주군에서 가장 오지로 통하는 구천동을 제쳐두고 무풍면 (茂豊面) 을 십승지로 꼽았다.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구천동의 빠른 변화를 예감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무풍면으로 가려면 무주읍에서 구천동으로 들어가는 중간쯤에서 만나는 나제통문 (羅濟通門) 을 통과해야 한다. 나제통문은 이름 그대로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대에 설치된 관문을 뜻한다. 무주읍에서 경북 성주로 이어지는 30번 국도가 개설될 때, 이 작은 터널도 뚫렸다. 자칫 그 이름으로 인해 고대에 개설된 것이 아닌가 착각할 수 있지만, 통문의 역사는 70여 년밖에 안된다.

나제통문을 지나면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10리 계곡을 만나고 그 끝에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다.대덕산 (大德山) 을 가운데 두고 남쪽에서 흘러오는 남대천과 동쪽에서 오는 무풍천이 만나는 사이가 들판이다. "쌀독에서 인심난다" 고 너른 들판은 한눈에 이곳의 인심을 대변해 준다. "살기 좋으니 인심이 온후할 수밖에 없지요. 여기에다 예부터 학문을 숭상해 예절 또한 군내에서는 으뜸이지요. "

유한철 (58) 부면장의 자랑이다. 그러나 한때 만명에 육박하던 인구가 지금은 3천명이 채 안된다고 하니, 이곳 역시 이농현상의 바람을 피하지는 못한 셈이다. 들이 넓어 쌀은 자급자족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주로 담배와 고랭지 채소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무풍면의 중심은 옛 무풍현의 관청이 있던 현리다. 이곳은 삼도봉에서 뻗어온 삿갓봉이 마을의 주산이다. 티없이 맑은 산이 학문을 숭상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앞산인 무봉산 (舞鳳山) 은 무풍 (茂豊 혹은 舞豊) 이란 현 이름을 만들어준 산이다.

현리 새터에서 무봉산을 바라보면 지리를 모르는 사람도 한 마리 큰 새가 날개를 펴고 훨훨 나는 형세를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다운 산이다. 무봉산을 낳은 산이 대덕산이다. 대덕산의 청룡 줄기가 무봉산을 낳고 백호 줄기가 시루봉을 만들었다. 그 사이가 증산리 석항동네다. 이곳에서 황인성 전총리와 김광수 자민련부총재가 태어났다. 한 마을에서 비슷한 때에 두 인물을 배출하니 동넷사람들은 지기 (地氣) 의 덕이라고 돌린다.

무풍은 단순한 피란지로서 십승지가 아니다. '삼풍에서 인재를 구하라' 고 했듯이 인물의 고장이다. 또 이곳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서부 경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다. 그런 까닭에 여느 곳과 달리 비결파들이 즐겨 찾아 들지는 않았다.

무주 = 최영주 편집위원

〈yjc9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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