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델 성역파괴…튀지 않으면 존재가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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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광고는 '어쨌든 튀어야 한다' 는 의무를 지고 만들어진다.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광고는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튄다는 것은 다른 광고와의 차별화를 의미한다. 광고인들이 때때로 전혀 의외의 모델을 광고에 등장시키는 것도 이같은 차별화 전략의 하나다.

최근 거의 동시에 선보인 SK텔레콤의 스피드011과 (주) 옥시의 걸레 전용세척제 노란옥시크린의 TV광고는 똑같이 진짜 스님을 모델로 등장시켜 차별화를 시도했다. 고승과 함께 대나무 숲길을 걸으며 인생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모델 한석규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린다. 민망해진 한석규가 가만히 휴대폰의 파워를 끈다. 그 순간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란 잔잔한 멘트가 흐른다.

이같은 내용의 스피드011 광고에 출연한 스님은 서울시내 한 사찰의 주지 청운스님. 높은 덕이 배어나오는 인상에다 서울공대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돋보이는 청운스님은 조계사 측의 추천을 받아 캐스팅됐다.

광고를 기획한 제일보젤의 신병철 차장은 "IMF시대를 살면서 스트레스를 더욱 많이 받는 소비자들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고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차별화된 광고를 만들기 위해 진짜 스님을 모델로 등장시켰다" 고 설명했다. 노란옥시크린 광고에는 기행으로 널리 알려진 '걸레스님' 중광이 등장했다.

지난해 이맘때 방영된 1탄에 이은 2탄 광고. 빨래줄에 걸린 하얀 천에 얼굴을 닦는 중광스님을 본 동자승이 "그건 수건이 아닌데" 라고 하자 중광스님이 "노란 걸로 빨면 걸레도 수건이야" 라고 노란옥시크린의 세척력을 자랑하며 계면쩍은 순간을 모면한다는 게 광고 줄거리. '걸레' 전용세척제라는 제품의 특징과 걸레스님이라는 인물특성이 딱 맞아 떨어져 모델로 기용했다는 게 광고를 제작한 대홍기획 측의 설명이다.

국내 광고계에선 2~3년 전까지만 해도 스님.신부.수녀 같은 성직자를 광고에 담는 것은 금기시 되다시피 했다. 성직자를 희화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할 경우 역효과가 우려되기 때문. 그러나 최근 알카바건전지.현대자동차 소나타Ⅲ.동산 섹시마일드 샴푸.현대전자 시티폰.삼성전자 잠잠청소기 등 일부 광고에서 일반 모델을 성직자로 분장시켜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광고업계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성직자 모델이 더 이상 기피영역이 될 수 없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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