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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난장]98회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영월을 출발해서 평창에 당도한 것이 아침 8시경이었다. 그들은 지난 장날과 똑같은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영월에서 팔다 남은 산나물과 코다리명태로 좌판을 채웠다.

벌써 두 번째 찾아온 장터여서 안면이 낯설지 않은 장꾼들이 수인사를 건네며 좌판을 기웃거리기도 하였지만, 거래는 한산한 편이었다. 지난 파수 때와 다른 광경이 있다면, 같은 난전꾼들이 몰려들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태연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철규만은 사뭇 긴장을 늦추지 않고 몰래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탈취당한 명태짐을 반드시 되찾게 되리라고 자신있게 말한 것을 잊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장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파장 무렵에 이르자, 변씨는 몇 번인가 철규에게 시선을 건네고 있었다. 모두들 좌판을 거두고 있는데,가망없는 일을 두고 비 맞은 수탉처럼 어두워질 때까지 썰렁하게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변씨와 철규의 안색을 살피고 있던 봉환이가 태호를 눈짓하여 슬금슬금 좌판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팔고 남은 명태짐을 적재함에 얼추 옮겨 실었을 때였다. 낯선 두 사내가 철규를 겨냥하고 엉거주춤 다가와서 귀엣말을 건넸다. 철규는 그들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장터어귀의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안쪽에는 구들을 놓은 작은 공간이 있었다.

펴놓은 담요를 걷어치우고 걸터앉자, 세 사람의 콧등이 서로 스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고 태연한 철규를 힐끗거리다가 불쑥 말문을 열었다.

"지난 파수 때, 명태짐을 잃어버렸는데도 찾아 나서지도 않았고 신고하지도 않았는데, 보통 배짱이 아닙디다? 그렇게 태연할 수 있소?"

"태연한 것도 눈에 거슬립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잇속을 바라지 않고 소일거리로 나선 장삿길이라 하더라도 장짐을 잃어버렸으면, 응당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나서는 게 인지상정 아니오?"

"장짐을 잃어버렸는데, 당황하지 않을 장사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응당 되돌려주실 줄 알고 있었으니까 태연하게 기다렸던 것입니다."

"돌려줄 것을 믿고 있었다는 게 보통 안목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도 수십년 전부터 평창장을 단골로 드나드는 같은 상인들이오.

물론 댁들도 엄연히 장세를 물고 있겠지만, 초면인 댁들이 회오리바람처럼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좌판을 크게 벌이고 북새통을 피우는 것을 보고 불안하게 여기는 상인들이 많았어요. 굴러온 돌에 박힌 돌 뽑힐까봐 겁이 났던 게지요.

우리들은 고작해야 잡살뱅이나 펴놓고 코 묻은 푼전이나 바라는 보따리장수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처럼 소동을 피우는 것을 보고 쓸개가 뒤틀리지 않는다면, 한 마디로 개자식들이오. 안 그렇소?

상도의상 장짐을 숨긴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만, 평창장이라 해보았자, 개구리 뱃바닥만한데 댁들이 장판을 휩쓸어버리면, 끽해야 리어카나 끌고다니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축들은 무얼 먹고 살겠소. "

"그만한 일로 장짐은 왜 빼돌립니까. 우리가 평창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영영 찾지못할 뻔했지 않았소. 장꾼을 만나면, 귓속말로 소곤소곤 얘기해서 물건을 파는 상인도 있고, 장바닥이 터져나가도록 북새통을 피우며 거래를 트는 상인도 있는 것이 옛날부터 있어온 장터 풍속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생긴 모양새가 천차만별이듯 장사하는 모양새도 잇속의 갈개를 따라 제각각이게 마련입니다. 그걸 트집 잡으시면,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게 눈에 거슬리고 배알이 뒤틀려 간섭하고 나서게 됩니다. 어쨌든 장짐은 돌려주시겠소?"

"돌려드려야지요. 곰팡이는 피지 않게 잘 보관해 뒀어요. 하지만 같은 노점상들끼리 앙숙으로 지내다보면, 노형들 기분도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역시 동병상련한다는 같은 상인들의 비위를 거슬리기는 싫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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