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IMF탈출 이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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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의 식민지였던 초기 시절의 아메리카 대륙은 영국의 '인간쓰레기 하치장' 같은 곳이었다. 이런저런 죄를 짓고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나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지독한 가난뱅이들은 무조건 미국행 선박에 쓸어넣었다.

범죄자들도 밀렵 (密獵) 을 했다든가, 빵 한 덩어리를 훔쳐먹었다든가, 빚을 갚지 못한 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내자, 아메리카로" 는 당시 영국정부의 중요한 시책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당시의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이민정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방출정책이었던 셈이지만 미국이 독립한 후에도 세계 각국에서 미대륙에 꾸역꾸역 모여든 사람들은 정치적.경제적.종교적으로 소외되거나 억눌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신생 미국은 '약속의 땅' 이요, '희망의 나라' 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올려놓은 초석이었음을 감안하면 그들의 예견은 정확했던 셈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민족의 첫 이민이라 할 수 있는 8세기중엽 통일신라시대때 신라인들에 의해 중국 당 (唐) 나라 해안지대에 건설된 '신라방 (新羅坊)' 은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우호적 관계 때문에 '성공' 은 미리 보장돼 있었다. 더구나 중국사람들이 혀를 찰 정도의 성실성과 집념으로 교역범위를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동에까지 넓혔다니 그들의 위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현대 이민의 배경은 초창기 미대륙 이민처럼 '도피' 의 의미가 강했으나 차츰 최악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목표가 아니라 '보다 나은 삶, 보다 확실한 미래' 를 보장받고자 하는 목표로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로 맨주먹으로 식솔들을 이끌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새 둥지를 튼 한국인 가운데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제 아무리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해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오죽하면' 고국을 등졌겠느냐는 것이 이민 한국인들의 한결같은 한탄이요, 푸념이다.

조국의 의미는 그만큼 강하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로 인한 경제대란 속에서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오죽하면' 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올해 3월말까지 30대만도 지난해보다 35%나 늘었다고 한다. '성공' 만을 빌어 줄 밖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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