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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집단 자폐’ 남자들아 크게 한번 저질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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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지음, 쌤앤파커스
304쪽, 1만3000원

부제가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이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지은이의 입담이며 급소를 찌르는 솜씨가 대단한 덕분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다.

표제글인 ‘나는 아내와의…’를 보자.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지만 심리적 건강을 위해 확 저질러 버리는 편을 권한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는 반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바로 끝난다나.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자를 찾던 지은이는 독일 유학 중 잠깐 다니러 온 길에 튼튼하고 용감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얼마나 튼튼한지 팔뚝 굵기가 장난이 아니어서 팔베개 삼아 잠을 청해도 바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첫 키스도 그녀가 살던 아파트 노인정 화장실 담벼락에 밀쳐놓고 했단다.(그의 아내는 그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심하게 열을 받는다는데 지은이는 ‘욕 먹어 싸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그런데 정말 지은이는 결혼을 가끔 후회한단다. 아주 가끔…. 그러나 그때 그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인’과 결혼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들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를 훨씬 더 많이 하는 반면 여자들은 이미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를 훨씬 많이 한다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니 고개가 갸웃거려지긴 한다.

웃자고 하는 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중년들의 아픔을 짚어내는 부분은 예리하다. 삶의 즐거움을 찾기 힘든 이 땅의 사내들이 보이는 현상으로 ‘큰 가슴으로의 퇴행’ ‘마라톤 열풍’ ‘폭탄주’ ‘마사지 열풍’을 꼽는다. 모두 소통 부재, 어디 가서 누구에게 편하게 맘을 털어놓을 수 없는 탓이다. “가슴에 머리를 처박고 울고 싶어서” “고통으로 존재를 확인하려” 들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심각한 자폐증 증세의 하나” 이며 정서적 교류에 목마른 ‘피부자극 결핍 증후군’이라 이름짓는다.

자신의 행복’에 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못한 중년 남성들을 위한 지은이의 처방은 ‘재미’와 ‘감탄’이다. 어쩌면 아내에게 ‘외롭고 허전한’ 남자들의 심리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법도 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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