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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칼럼] 중국은 언제까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지원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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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들어 중국과 북한 간에 인사왕래가 빈번해지고 있다. 금년이 ‘중조(中朝)친선의 해’이기 때문이다. 금년 이른 봄부터 양국 간에는 당 차원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정부수준, 민간레벨 할 것 없이 서로 간에 친선사절단 방문이 각 분야별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1992년 한중수교이래 오늘날 까지 중국이 북한을 지원 해주는 근거가 무엇인가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왔다. 그간 우리 학계에서는 다음 세 가지 설로 근거를 말해왔다.

첫째는 북한과 중국이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공유함과 동시에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혈맹관계라는 설이다. 둘째로는 중국과 북한은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어 안보상 순치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설이다. 셋째로는 한국주도로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과 일본세력의 지원을 업은 한국이 한만(韓滿)국경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중국안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설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북한이 붕괴될 경우 수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몰려올 것이라는 난민(難民)유입설이 추가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21세기의 현실에서 보면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설은 이미 시효가 지났거나 한낱 경험법칙에서 유추되는 비현실적 가설일 뿐이다. 우선 오늘날 중국과 북한 간에는 이데올로기적 공통성이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또 양국을 혈맹으로 묶어온 국제 환경으로서의 동서냉전도 이미 끝났다.

한국전쟁당시 함께 싸웠던 미국과 중국은 오래전에 전쟁상태를 종료시켰고 최근에는 지구의 경제운명을 타개할 책임을 미국과 공유하는 G2로 중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을 통치하는 중국공산당은 이미 혁명정당이라기보다는 다른 민주제정파와 함께 중국을 통치하는 집정당(執政黨)이다.

이점에서 아직도 혁명을 지향한다는 북한의 노동당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은 수령이론을 내세우면서 대외 개방 아닌 대외 폐쇄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북한과는 이념상 어떤 공통성도 찾기 힘들다. 오히려 체제상으로 보면 오늘의 중국은 북한보다는 한국과 더 많은 공통성을 갖는다. 한국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로서 정치, 경제, 안보,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협력의 파트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간 많은 학자들이 공감해 온 순치관계(脣齒關係)론도 상황논리에 맞지 않다. 최근 전쟁과 평화에 관한 등소평(鄧小平) 이론을 검토해보면 중국과 북한은 산수상련(山水相連)의 인방(隣邦)일 뿐 안보상의 순치관계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

등소평이론은 모택동주석이 강조한 전쟁불가피론을 전쟁가피론(戰爭可避論)으로 바꾸고 21세기 전반기인 50년 동안 강대국 간에는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미중관계는 협력과 경쟁이 교차되는 관계이기는 하나 적대관계로 변할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보았다.

그는 특히 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이론을 수정,현대 세계에서 전쟁의 원인은 패권 추구에 있다고 말하고 중국은 반패권의 입장을 지키면서 국가현대화에 박차를 가해 힘이 아닌 경제력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복원하겠다고 역설했다.

등소평은 특히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논하면서 중국의 주변 국가는 29개국인데 이중 직접 국경을 맞댄 국가는 15개국으로 지난 기간 동안 장기적인 안정관계를 유지해 왔고 특히 이대기소(以大欺小 :대국이 소국을 기만함)하지 않고 이강능약(以强凌弱: 강대국이 약소국을 없이 여김)하지 않으며 호혜평등의 협력관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중국 측의 이러한 새로운 정세관에서 보면 중국과 북한을 이어주는 유대로서 이념의 공통성이나 순치관계론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 그럼에도 중국은 아직도 북한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북측의 입장을 두둔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특히 북한이 유엔의 결의도 무시하고 인민을 굶기면서 핵실험을 한다거나 탄도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중국외교에 부담을 주고 있는데도 북한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중국은 현시점에서 북한정권이 돌연 붕괴하거나 혼란에 빠질 경우 북한 난민이 중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한다. 또 한국주도의 통일이 동북아 정치지형(地形)에 미칠 파장이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에 중국안보에 미칠 상황평가가 완료될 때까지는 북한정권을 계속 유지시키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난민유입설은 김정일 정권이 '인민'을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정권 유지를 위해 소모(消耗)시킬 존재로 규정한 수령(首令)론이 득세하는 상황 속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북한정권이 인민의 이익을 위해 복무(服務)하는 정권으로 바뀐다면 가족주의 전통에 익숙한 북한 땅에서 탈북현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나 강성대국(强盛大國)을 지향하지않고 중국처럼 인본위(人本位)의 샤오캉(小康)사회건설을 추구한다면 난민현상은 일어날 수없다.

둘째로 한국은 통일이전이나 이후 주변대국들과 호혜평등의 원칙 하에서 협력을 추구하기 때문에 핵무기나 미사일, 항공모함 같은 대량살상의 전략무기를 보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유럽의 화란(和蘭)처럼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이웃국가들과 잘 협력하면서 부강을 추구하는 길을 걷고 있다. 한반도가 한국주도로 통일되면 미군은 더 이상 한반도에 머무를 이유가 없으며 통일한국은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교류를 통해 이 지역에 새로운 경제 안보 공동체를 형성하는데서 큰 몫을 수행할 것이다.

지금 중국은 북한인민을 돕는다기보다는 핵과 탄도미사일로서 한국을 위협하고 미국을 괴롭히는 김정일 정권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중국은 미국과 북한사이에서 외교적 이익을 다소 얻겠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촉진하고 나아가 한국마저도 전략무기 보유에의 유혹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또 유엔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유엔안보리 결의이행을 북한에 요구하고 이의 수락여부를 대북협력에 연계시키지 않는다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의 북한은 중국에 추호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부담만 될 뿐이다. 중국대륙에서 방황하는 탈북자들 때문에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가끔 인권시비에 휘말린다. 중국은 언제까지 북한인민이 아닌 김정일 독재정권을 지원할 것인가.

이제 중국은 김정일 정권보다는 북한인민의 참상(慘狀)을 생각하면서 대북정책의 방향을 재검토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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