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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라운지] 주한 외교관이 본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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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각국 대사관과 외교 전문가를 상대로 "한국 외교통상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봤다. 김선일씨 피살 사건 등으로 비판을 받는 외교부에 대한 외국 외교관들의 평가를 듣기 위해서였다. 다음은 30여 주한 외국 대사관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다.

◇한국 외교부 총론은 우수, 각론은 문제 있어=국제정세에 대한 외교부의 이해력을 물었다. 대체로'우수하다''보통'등 응답이 많았다. '보통 이하'또는 '부족하다'는 답은 없었다. 다만 한 대사관은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 외교관은 교민 보호와 관련, "외교부가 중국 거주 조선족에 대한 정책 및 외교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외교부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느냐는 질문에는 "별로 창의적이지 않다" "청와대가 외교정책을 결정하면서 이를 외교부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답이 나왔다. 객관식 문항에는 '보통이다''우수하다'는 답이 주류를 이뤘다. 한 응답자는 "현재 외교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능력과 효율성을 높이는 개혁"이라며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개혁이 아닌 마녀사냥식의 정치게임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일부 응답자는 외교부가 대사관의 요청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 외교관 능력은=한국 외교관에 대해서는 대체로 '우수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한국 외교관 가운데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반기문 장관▶최영진 차관▶조태용 북핵외교기획단장▶권영민 주독일대사 등이 꼽혔다. 반 장관에 대해서는 "지적이고 따듯한 마음씨의 소유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 차관에 대해서는 "국제적 흐름과 외교 현안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평이다. 한 대사관은 권영민 대사에 대해 "내가 창피할 정도로 독일어를 잘 구사한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국장급 이상의 고참 외교관과 신세대 외교관의 세대차를 묻는 질문에는 "신세대 외교관들이 상사의 권위적인 분위기에 눌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외교관 등용문이 되고 있는 외무고시 제도에 대해서는 "너무 낡은 제도로 21세기에 유능한 외교관을 선발하기에는 적절한 시스템은 아니다"라는 견해가 있었다.

◇반미는 잘못=외교부의 정책 실패를 지적해 달라는 질문에 다수의 외교관은 "반미주의로 인해 한.미 동맹이 약화된 것은 큰 실수"라며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해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인사는 2001년 한국이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에 대한 모스크바의 입장을 지지한 것은 외교적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ABM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러시아를 지지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말했다. 일부 대사관은 "외교 관례상 외교부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중히 설문조사를 거절하기도 했다.

최원기.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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