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디자인 카드, 지갑 속에 개성이 들어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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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기준, 신용카드 발급 수는 약 9800만 장(통계청 자료). 성인 인구 1인당 평균 2∼3장의 카드를 소유한 셈이다. 그중 눈에 띄는 카드가 되기 위해 디자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신한카드 브랜드 전략팀 최은경 부부장은 “이제 고객들이 카드 디자인 자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며 “신용카드는 휴대전화처럼 자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고 말했다. 가로 86㎜, 세로 54㎜의 미학. 이제 카드업계의 ‘히든 카드’는 디자인이다.

독창적 디자인으로 차별화

올 4월 비씨카드는 영국의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 시 스콧의 그림으로 디자인을 바꿨다. 한두 종을 바꾼 것이 아니라 대표 상품 8종을 전부 바꿨다. 한 작가의 작품으로 통일성을 주면서 카드 전체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만들겠다는 계획에서다. 비씨카드 디자인팀 이상민 차장은 “시 스콧이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했다”며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타사와 차별화하면서 비씨카드만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모르는 작가를 소개한다는 측면에서 소장 가치도 있다.

디자인으로 카드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현대카드의 ‘알파벳 카드’가 먼저다. 현대카드는 2003년 ‘Less is more’라는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기존의 카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꿨다. 기능과 제휴처 등을 빼고 카드명인 알파벳 하나와 카드번호만 남긴 것. 간결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현대카드M’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620만 명이 가입했다. 현대카드 디자인실 오준식 실장은 “현재 회사 내에서 디자인실의 위상과 비중이 매우 높다”며 “올 하반기에 깜짝 놀랄 만한 디자인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매니어를 위한 맞춤형도 나와

특정 집단만을 위해 맞춤형으로 카드를 기획하기도 한다. 신한카드는 5월에 ‘서태지 카드’ 2종을 출시했다. 가수 서태지의 8집 타이틀곡 ‘줄리엣’의 이미지와 8집의 두 번째 싱글 앨범 재킷 사진을 카드에 그대로 옮겼다. 최은경 부부장은 “오직 서태지 매니어만을 위한 카드라 디자인을 따로 하지 않고 앨범 이미지를 따왔다”고 소개했다. 타깃은 좁지만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다. 신한 NBA카드도 마찬가지다. 이 카드는 미국 프로농구 리그인 NBA와 제휴를 맺고 4월에 출시됐다. 카드에 시카고 불스, LA 레이커스 등 총 8개 구단의 로고가 들어가 있어 각자 좋아하는 팀의 디자인을 고를 수 있다.

3월 출시된 ‘현대카드R10’은 기존 카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한 분홍색이다. 오준식 실장은 “핫 핑크의 경우, 좋아하는 사람은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매니어 컬러”라며 “카드 자체가 존재감이 강해 디자인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외환카드의 경우 아예 고객이 직접 디자인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프리디자인 카드’ ‘마이캔버스 카드’가 그렇다. 자신의 사진이나 명화, 만화, 게임 캐릭터 등 원하는 대로 카드에 넣을 수 있다. 오직 여성만을 위해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카드도 있다. 올 1월에 나온 ‘KB스윗카드’ 3종이다. 각각 매화, 목련, 난을 그려 넣고 자개로 포인트를 주었다.

LED카드·향수카드·한지카드 …

플라스틱으로만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버리자. 특수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카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카드에서 빛이 나거나, 향기가 나 눈과 코를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비씨카드는 지난해 발광카드를 개발해 ‘우리은행V포인트 카드’에 적용했다. 발광 LED 단자를 삽입해 카드를 단말기에 가져가면 단말기로부터 전원을 공급받아 카드가 빛난다. 퍼퓸 카드는 표면에 붙은 향기매체에 좋아하는 향수를 떨어뜨리면 한 달 이상 향이 지속된다.

플라스틱을 아예 다른 소재로 대체하기도 한다. 최상위 클래스의 카드만을 만드는 카드 제조사 GK파워는 금·은·동·니켈 등을 플라스틱에 미세하게 도금하거나 주조해 카드를 만든다. 6월 중순 출시될 비씨카드의 한지카드도 한지를 여러 겹으로 접착 처리했다. 태우면 환경 유해물질인 다이옥신이 발생하지 않고, 매립해도 자체적으로 분해가 가능해 친환경적이라는 게 비씨카드 측의 설명이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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