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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⑤

휴게소에서 제천 쪽으로 나가는 좁은 진입로를 가로막는 위치에 차를 세운 봉환은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잠시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차를 내린 식당주인은 그들이 세워둔 승용차로 접근하고 있었고, 봉환은 불이 켜진 가게를 겨냥하고 걸어가고 있었다. 봉환의 손에는 항상 적재함에 비치하고 다니던 쇠파이프 하나가 들려 있었다.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둘러 앉아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세 사람 중에서 태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창문을 통해서 어둠 속에 있는 봉환과 밝은 불빛 아래 있던 태호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마주쳤다. 태호가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키자, 바깥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았던 두 사내도 거의 감각적으로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때 벌써 봉환은 식탁까지 다가와 있었다. 봉환이가 물었다.

"태호. 일마들 빼다구가 뿌러지도록 확 까부러도 되제?"

정중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태호의 동의를 얻으려는 질문이었는데, 태호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등뒤에 감추고 있던 쇠파이프가 허공으로 번쩍 튀어올랐고, 곧이어 그들이 둘러 앉았던 식탁이 두 동강으로 박살나서 바스라져 내려앉고 말았다. 그러나 쇠파이프는 다시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고, 봉환의 입에선 침이 먼저 튀었다.

"꿇어 앉어 이 새끼들아. "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폭력사태였으므로 판매대에 서 있던 여자는 그때서야 식당이 떠나갈 듯 외마디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거의 때를 같이하고 가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세 사람이란 태호를 포함한 수효였다.

태호도 납치범들과 함께 덩달아 무릎을 꿇었을만치 봉환의 태도는 폭발 직전의 폭탄처럼 위협적이었다.그의 두 눈에는 뇌관처럼 불이 튀고 있었다. 그러나 허공으로 치솟았던 쇠파이프는 위협으로만 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식탁 아래 놓여 있던 플라스틱 쓰기통 하나가 그 단박에 박살나서 흩어졌다.

쇠파이프는 또 다시 허공으로 올랐는데, 꿇어앉은 세 사람의 시선은 봉환이가 아닌 그 쇠파이프의 하강과 상승을 따라 가파르게 움직이고 있었다.그러나 그 쇠파이프의 움직임이 의외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대로 치켜든 상태로 줄곧 외마디 소리를 토하고 있는 판매대의 여자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봉환의 입에서 걸찍한 한 마디가 쏟아졌다.

"야, 이년아. 무섭디라도 주디 (입) 꾹 다물고 있그라. 또 소리 질러대면, 휴게소 십분 안에 예지리 (모조리) 박살냈뿐다?"

공갈 한마디에 그 여자는 독약이라도 마신 듯 제풀에 기가 죽어 눈에 흰창을 보이며 판매대 아래로 연기 사그라지듯 꼬꾸라졌다. 그제서야 다시 세 사람에게 돌아선 봉환은 그중에서 뚝심깨나 써 보이는 젊은 사내에게 다가섰다. 와들와들 떨리는 두 손으로 콧등을 가로막으며 쩔쩔매고 있는 사내의 등줄기를 쇠파이프로 툭툭 내려치며 말했다.

"야 씨발놈덜. 너그들 코피 한분 나고 싶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지만, 얼굴에는 살기가 등등했으므로 봉환의 말을 어떻게 받아넘겨야할지 도대체 방도가 없었다.

납치범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봉환은 반 농담조로 그렇게 묻기만 했을 뿐, 툭툭 치기만 하고 있던 쇠파이프를 그 순간 번쩍 들어 젊은 사내의 등줄기를 호되게 내리쳤다.

사내의 몸뚱이가 연잎에서 구르는 청개구리처럼 오그라지며 모잡이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엄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봉환이뿐이었다. 애당초 그만한 덩치의 사내가 나둥그러질 정도로 혹독하게 내려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봉환은 납치범이란 이 두 사내의 허약한 면목을 발견한 것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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