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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③

장터난전으로 가서 남은 재고를 처분하려 하였던 당초의 계획은 여의치 않았다.산나물 거래는 오전장에서 거래가 끝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었다.

기다려 보았자 매기가 없을 것을 알아챈 그들은 일찌감치 영월길로 떠날 채비를 하게 되었다.해거름녘에 영월에 당도해서 저녁을 먹기 위해 태호가 단골로 드나들었던 장릉 앞의 간이식당으로 찾아간 것이 그들에겐 실책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 식당에서 저녁을 걸게 먹고 방 하나를 얻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일행중 누구도 그런 불상사가 닥치리라곤 예상할 수 없었다.다만 낙태한 암고양이같이 하루 종일 찌뿌듯한 봉환의 눈치만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을 뿐이었다.

태호를 제외한 세 사람이 좁은 방에 몸을 누이고 나서야 변씨는 하루 종일 참고 있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봉환이가 하루 종일 걸레 씹은 얼굴로 시큰둥한 걸 보자니, 한솥밥을 먹고 있는 나 역시 하루 종일 심사가 편치 않구만. 하지만 지금 와서 뾰족한 방도가 있어야지. 속된 말로, 죽 떠먹은 자리 없고 그것 한 흔적 없다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수월한 일인가.자네가 평소에 계집질이라면 환장한 놈처럼 갈팡질팡하며 몸가짐을 절도있게 가지지 못했던 게 불찰이지. 지금은 엇 뜨거라 하겠지만, 그땐 벌써 구멍 찾기 좋아하다가 물독에 대가리 거꾸로 처박고 버둥대는 놈처럼 진퇴양난이지. 겉보기엔 양순하던 양과부가 그렇게 당차게 나올 줄은 나잇살이나 먹었다는 나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야. " 처음엔 변씨의 훈계를 듣지 않으려고 귀까지 막고 누웠던 봉환은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앉더니 담배를 뒤져 피워 물었다. "측간 개구리에 보지 물린다 카디 형님 말씀대로 내가 그 꼴 됐뿌렀네요. 그년이 색에 게걸이 들었다는 걸 진작 몰랐던 게 불찰이었습니더. 기왕 말이 났으니 까놓고 말하니더만, 지난 밤에는 생지옥을 헤매다 풀려난 기분이라 카이요. 하루 종일 장바닥에서 부시대야 할 내 처지는 생각 않고 새벽까지 허벅지를 파고들면서 한번만 한번만 더 하는데 참말로 미치고 환장하겠데요. 얼매나 시달렸는지 나중에는 눈 앞에서 난데없는 노랑나비떼가 왔다갔다 하데요. 형님 말대로 나도 염치없이 구멍찾기만 즐기다가 임자 만난 게지여. 승희가 나한테 하던 버르장머리가 생각나서 하자고 할 때마다 자꾸 웃었지요. 그런데 이년은 지가 좋아서 웃는 줄 알더라 카이요. 형님, 장차 우짜면 좋겠습니껴?" "방도야 없을라구. 양과부가 지쳐서 단념할 때까지 임자가 진부장 출입만 하지 않는다면 해결날 듯싶구만. 우리한테까지 찾아와서 임자를 내놓으라고 공갈을 놓을까? 하지만 어제 저녁에 강단있게 나오는 꼴로 봐선 호락호락할 것 같지가 않아서 걱정이야. " "당장은 그 방도를 써먹을 수밖에 없을시더마는 자동차 운전을 누가 합니꺼?" "내가 하지. 나도 일종면허야. " 벽을 마주하고 모잡이로 누워 잠든 줄 알았던 철규가 그렇게 말했다.

"당분간은 한선생이 맡으면 되겠구만. 그리고 봉환이도 이번의 횡액을 거울 삼아서 앞으로는 그 꼴같잖은 고기방망이 함부로 내두르지 말게. 불하고 계집은 쑤석거리면 탈나게 마련이여. 임자만한 물건이야 늙바탕인 나도 갖고 있어. 내가 비로소 말하지만, 서울시절에 내가 난잡하게 놀아서 고자되고 말았다는 소문이 주문진 어판장에 짜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당사자인 내가 모를 턱이 있나.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그러나 어처구니 없어서 그걸 내로라하고 써먹을 때만 기다리며 지금은 못 들은 척하고 있는 게야. " 누워 있던 철규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가 성장애자임이 틀림없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 철규로서는 놀라운 반전의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철규는 다짐하고 들지는 않았다.

봉환을 위해 둘러대는 궤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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