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광장 시위대에 군인들이 기관총 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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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군인들이 시위 군중을 향해 조준 사격을 했으며 기관총을 무차별 사격했다.”

미국 정부가 최근 기밀 문서에서 해제한 중국 천안문(天安門) 사태 당시 현장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천안문 사태 20주기(4일)를 맞아 홍콩에서 대학생들이 단식투쟁을 하고, 대규모 추모 대회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이런 내용이 공개되자 상당한 파문이 일고 있다. 2일 명보(明報)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제임스 릴리 당시 주중 미국대사는 중국군의 시위대 총격 과정을 시간대별로 국무부와 국가안전회의에 보고했다. 상황은 1989년 6월 4일 오전 1시 정각에 시작된다.

01:00  곳곳 화염 광장서 총성 베이징 천안문 광장 부근 베이신화(北新華) 거리에서 1.6㎞ 떨어진 민쭈(民族)호텔 주변에서 가장 먼저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천안문 광장 부근인 시창안(西長安) 도로 위에는 버스와 화물차가 전복돼 있고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다.

01:10  시위대, 군인 1명 살해  군중이 장갑차를 향해 돌을 던지며 멈추라고 소리 질렀다. 분노한 시위대는 장갑차를 에워싸고 불을 질렀다. 잠시 후 장갑차에서 군인 한 명이 나오자 사람들이 그를 때려 죽였다.

01:20  일부 장갑차 사격 개시  일부 장갑차가 사격을 했다. 시위대 일부가 피를 흘리며 베이신화 거리에 쓰러졌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공포탄이 아닌 실탄을 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위대는 천안문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01:45  새로운 진압 부대 도착  새로운 부대가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장갑차는 창안 도로를 향해 서치라이트를 비췄고 거기엔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있었다.

02:09  도망가는 시위대에 사격  군인과 장갑차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동쪽 베이징(北京)호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에 맞아 쓰러졌고 신음했다.

02:30  군인 100여 명 조준 사격  100여 명의 군인이 역사박물관 옆 도로 건너편에 엎드려 군중에게 조준 사격을 하고 있었다. 저격수와 같았다. 사람들은 도주했다. 몇몇이 다시 거리로 돌아오자 총성이 울렸다. 10~15명이 곧바로 쓰러졌다.

04:27  천안문 광장 가로등 점등  약 한 시간 전에 불이 꺼졌던 천안문 광장 가로등이 다시 불을 밝혔다. 광장에는 장갑차와 전차, 트럭이 보였다.

05:30  장갑차·전차 50대 진입  약 50대의 장갑차와 전차가 광장으로 진입했다. 지프 위에 장착돼 있는 기관총이 시위대를 향해 15분 동안 사격했다. 25~30명이 도로에 쓰러졌다.

06:20  장갑차 40대 무차별 사격  40대가량의 장갑차가 광장으로 들어오더니 10여 분 동안 시위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07:30  “반혁명 분자 분쇄” 방송  천안문 광장엔 (중국) 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확성기를 통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동지들, 좋은 아침. 반혁명 분자들은 이미 분쇄됐습니다. 우리의 천안문 광장은 이미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3일 오전 홍콩 섬 중심부 타임광장 앞. 1일부터 천안문 사태 재평가와 중국 민주화를 요구하며 64시간 단식농성 중인 홍콩대학생연합(HKFS) 소속 학생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된 이 같은 내용을 접하고 경악했다. 이들을 격려하던 시민 100여 명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HKFS 간사인 입초얀(여·홍콩침례대 사회학과 2년)은 “군인들이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고 조준 사격을 한 것은 중국 현대사의 수치”라고 말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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