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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 '장소파괴'…목욕탕 퍼포먼스·파자마 댄스파티 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지난달 3일 영등포구 신길동의 신길탕. 한달에 한 번 있는 정기휴일인데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그것도 훤칠한 미남들의 대거 출현. 절로 눈길이 갈 만했다.쉬는 날의 웬 목욕 인파?

아니. 이들은 엉뚱하게도 구두 브랜드 '와키 앤 타키' 의 패션쇼 참가자들이었다.

패션쇼라 하면 으레 호텔이나 이벤트 홀, 그리고 우아함을 떠올리 게 마련이다.하지만 그 등식이 깨진 지는 벌써 오래. 이제 무대는 목욕탕 말고도 카페.화랑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장소만 달라지는 게 아니고 아예 관객과 함께하는 퍼포먼스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도 제법 흔하다.무대없는 행사장에서 모델과 눈높이를 맞추는 즐거움. 그리고 이어지는 한바탕 춤.

이번 목욕탕 패션쇼는 서울예전 광고창작과 동문인 정경아씨와 김유희씨의 기획작품. 정확히는 '와키…' 의 공모 아이디어다.마케팅팀 김영미씨 얘기. "신세대들에게 어색한 분위기는 통하지 않아요. 고급문화만 문화가 아니잖아요? 이제는 이미 있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 요즘 같은 시대에 딱 맞고요. " 서울예전 남학생 8명이 모델로 나왔다.타월로 만든 옷을 걸치고 욕조 타일을 따라 걸으며 여름 샌들을 선보였다.

그동안 동네 아줌마까지 포함된 관객은 동그랗고 낮은 목욕의자에 앉아 세모난 초코우유를 먹으며 쇼를 즐겼다.그런가 하면 지난달 20일 패션브랜드 '롤롤' 의 언더웨어제품 '롤 (lol)' 의 론칭쇼 (launching show) .참가조건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파자마 차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하다 못해 샤워캡이라도 쓰거나 베개라도 안고서야 입장이 가능했다.

특별한 무대 없이 마치 '장난 치듯' 쇼를 진행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손님들과 함께 하는 댄스파티, '웃기는 파자마' 콘테스트로 이어졌다.개인 디자이너라고 이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디자이너 심상보씨가 지난 1월 이대앞 카페 '고구려' 에서 일을 벌인데 이어 정구호씨는 지난달 7일 샘터화랑에서 두 번째 쇼를 가졌다.잠시 정씨의 언급. "패션은 상업이 아닌 하나의 예술. 따라서 패션쇼도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예술공간이 행사장이 될 수밖에.

이달 매주 금요일 청담동 소재 하드락 카페에서 열리는 '리바이스 나이트' 도 비슷한 사례다. 록밴드 '할리퀸' 과 함께 하는 '리바이스 나이트' 행사. 자사제품을 착용한 입장객에게 티셔츠를 증정하는 동시에 할리퀸에게 신상품을 입혀 제품을 알린다는 것.

다음달에는 가수의 콘서트 형식을 빈 패션쇼를 계획하고 있다.'공주패션' 으로 유명한 오브제는 다음달 8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야외 패션쇼를 할 예정. 패션을 우리 말로 바꾸자면 유행쯤 될까. 바로 시간성이다.틀 깨기와 자유로움의 상징인 패션쇼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렇게 보면 패션쇼의 형식.장소 파괴는 패션의 기본정신을 찾아가는 하나의 구도 (求道) 로 간주해도 좋을 것 같다.그 대열에 가급적 많은 패션 전문가들이 동참하길. 그래서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에 성큼 더 다가서시길.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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