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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선거법도 못고치는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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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방선거는 닥쳐오는데 선거법 개정협상은 제자리걸음이다.고비용 저효율의 정치를 뜯어고치는 정치개혁은 고사하고 선거도 못치를 지경이 되고 있다.행정구역이 바뀐 데 따라 선거구 조정을 해야 하는데 법개정이 안돼 기본적인 선거준비 작업도 못하고 있다고 중앙선관위는 아우성이다.

정치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극복에 앞장서야 하느니,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선도해야 하느니 하는 식의 이상 (理想) 은 접어두고라도 최소한의 할 일은 해야 한다.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본 뒷바라지조차 못하는 정치권에 무슨 희망을 걸 수 있는가.

선거법 협상의 교착은 우리 정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단순히 선거법의 문제가 아니라 여야의 반목.갈등.대결이 이 문제로 압축돼 나타나는 것이다.때문에 우리는 협상에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판가름할 마음조차 생겨나지 않는다.

여당은 왜 한나라당이 연합공천금지 명문화,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 구청장 임명제를 고집하는지 잘 알 것이다.경기도만 해도 십수명의 야당 기초단체장들이 여당으로 몰려가고, 경기도지사.인천시장의 후보를 두 여당이 맞바꾸는 식의 정당정치 훼손을 서슴지 않고, 비리수사니 뭐니 하며 인위적인 정계개편설을 흘리는 마당에 야당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겠는가.그러고도 선거법협상 지연 책임이 야당에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야당은 더욱 한심하다.PCS사업에 뇌물을 받았거나, 환란 (換亂)에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수사를 받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계개편을 핑계로 이를 피하려고 선거법협상을 물고늘어지는 꼴이다.철새정치인들이 당을 떠나는 것이 왜 여당만의 책임인가.

야당이 제 구실을 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들이 떠나겠는가.정해진 당론이 의원총회 한번 열리면 뒤집히는 식의 리더십 부재 책임을 왜 선거법에 걸어 여당에 떠넘기려 하는가.

악화된 여야관계가 짧은 시일 안에 나아질 전망이 없다.그렇다고 선거법을 내팽겨 둘 수도 없다.야당은 당초 합의한 대로 타결된 부분만이라도 빨리 처리하도록 협조해야 한다.여당도 야당이 연합공천 금지 명문화 등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게 된 절박한 배경을 이해하고 더 이상 야당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옳다.선거는 치러야 하지 않는가.그것이 정치권의 최소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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