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원 불분명한 정책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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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 각 부처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재원조달 방안을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구조조정과 실업자 지원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어 혼란스럽다.이같은 현상은 부분적으로는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경제담당 부총리가 없어진 반면 경제대책조정회의가 아직 자리잡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생색내기 정책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문제, 특히 대통령이 주목하는 과제에 대해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보는 경향이 있다.그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재원마련은 뒷전에 밀리고 실천단계에서 예산당국이 제동을 걸거나 국민부담 과중이라는 벽에 부닥치면 슬그머니 없던 일로 치워버린다.

예를 들어 재정경제부.노동부.산업자원부.외교통상부.건설교통부.보건복지부가 이미 발표했거나 검토중인 실업자 지원,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과 수출진흥에 들어갈 돈은 50조원이 넘는다.여기에는 이미 정부가 지출을 확정해 일부 시행에 들어간 실업종합대책 및 구조조정자금은 제외돼 있다.

정부 각 부처는 재원조달과 관련, 국공채 발행, 외국금융기관에서 빌린 자금이나 외국인 투자분, 더 나아가 공기업 매각대금까지 거론하지만 어느 하나 실현되기가 쉽지 않은 방안이다.기본적으로 정부정책에 소요되는 재원마련을 하다 보면 대부분 국민부담으로 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도 관료들은 아직도 지난 시절의 타성에 젖어 있다.

구조조정중 가장 중요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를 하지 않고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우며 부실채권 정리에는 막대한 공공자금이 필요하다는 게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지적이다.그러나 막상 이 점에 대해 정부는 국민앞에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선진국기준에 의한 부실채권의 총규모도 공표하지 않고 있다.이렇게 실제로 개혁이 필요하지만 국민에게 인기없는 정책은 손대려 하지 않고 당장 생색나고 인기가 있지만 내용은 별로 없는 정책만 남발해서는 책임있는 정부상을 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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