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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잔혹물 영화'조용한 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올해 대여섯편이 예정돼 있는 공포영화 가운데 제1탄인 '조용한 가족' 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물론 아무런 유보없이 '성공적' 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체를 두고 평점을 매긴다면 합격점을 매겨도 무난할 듯 싶다.'조용한 가족' 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코믹잔혹물' 을 표방했다.

'웃음' 과 '두려움' 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지 일찍부터 궁금증을 유발했다.'아담스 패밀리' 의 아류로 될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보려는 듯 시사회장은 4백석이 넘는 좌석이 모자라 복도에 앉거나 서서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붐볐다.그러나 본격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처음 20여분간 아슬아슬하다 싶게 이야기가 늘어졌다.

웃겨야겠다는 초조감이 관객들에게 전해질 정도였다.하지만 '사건' 이 벌어지면서 영화 곳곳에 숨겨놓은 트릭들이 빛을 발하고, 영화는 코믹보다 잔혹한 면이 두드러지면서 관객들을 긴장시켰다.

삼촌까지 등장하는 가족이 영화의 중심에 놓인 건 한국영화로는 드문 풍경이었다.'조용한 가족' 이 주는 신선함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정리해고 당한 아버지때문에 일가족이 지방 소도시로 내려와 운영하게 된 산장은 작금의 한국사회가 초래한 '불안' 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희망' 이 교차하는, 우리들의 둥지를 상징한다.

카메라는 그 소외된 구역에 렌즈를 들이대고, 탐욕과 잔인성이 불러온 핏빛 사건들을 다소 장난끼어린 시선으로 훔쳐본다.오랜만에 찾아온 첫 손님이 이튿날 시체로 발견되고, 장사에 지장이 생길 것을 두려워한 가족들이 시체를 매장한다.

가족들이 사건에 연루되는 '잘못 끼워진 첫단추' 로서의 설정은 별 무리가 없었다. "빨랑 비닐 포대 가져와. " 시체매장을 주도하는 아버지의 비장한 말투는 피로 얼룩진 장면에서도 관객을 웃겼다.사건들은 자연스럽게 맞물려 들어갔고 반전도 효과적이었다.

가족들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죄가를 치르지 않고 모두 생존한다는 결말에 반발심이 생기지 않는것도 그런 탓이다.그러나 이같은 플롯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을 보다 강렬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감독이 '도전' 보다는 '안전' 을 택한 결과로 보인다.특히 등장인물들의 밋밋한 연기는 흠이었다.박인환과 나문희, 최민식은 기존의 연기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송강호 역시 '넘버3' 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새로운 시도에 걸맞는 연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특히 송강호의 경우, '넘버3' 의 연기 주변을 맴도는 어정쩡함이 안타까움을 자아낼 정도였다.

'아담스 패밀리' 의 프라이데이를 닮은 신인 고호경의 눈빛연기는 공포분위기를 상승시키는데까지는 연결되지 못했다.산장 내부를 훑어가는 카메라 워크는 폐쇄공포감을 끌어내지 못했고, 사전에 관객과 공모함으로써 형성되는 서스펜스를 유도하는데도 실패했다.

이런 결점들을 적당히 눈감아 준다면 이 영화는 오락용으로 별 손색이 없다.물론 '아담스 패밀리' 나 '파고' 같은 코엔 형제의 영화, 대니 보일 감독의 '쉘로우 그레이브' 에 눈높이를 두고 있는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그래도 '조용한 가족' 이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시나리오가 좋으면 영화의 절반은 성공' 이라는 경험칙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25일 개봉.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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