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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중진 문학인들 '내일을 여는 작가'에 연재시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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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랜 세월 글쓰기에 모범을 보여온 문단의 원로.중진 작가들이 자신의 삶과 사유가 담겨 있는 자전적 내용의 산문을 통해 이 시대의 문학과 현실을 조망하겠다고 나섰다.신경림.박완서.김윤식.김병익씨 4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신경림)에서 계간으로 재창간해 17일부터 배포할 문학지 '내일을 여는 작가' 봄호에 '저무는 21세기를 바라보며' 라는 공동주제로 특집연재를 시작했다.

내년 봄호까지 1년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으로 작가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와 문학이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을 정리하고 시대변화에 맞는 문학적 돌파구를 모색한다는 취지다.황광수 주간은 이 기획연재가 "시대의 문학적 요구에 대한 대안적 사고를 담고 있다" 고 설명했다.

시.소설.평론만 중시하던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자전적 기록을 담은 산문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다는 뜻이다.세기말의 전환기에 우리 문학계에 나타나고 있는 세대간 단절현상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문학을 모색하자는 의도도 담겨있다.

박완서씨는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느낀 단상을 바탕으로 한 '두부' 를 내놓았다.

정권교체가 되었다지만 그 자리에 초청된 사람들은 이전부터 계속 봐왔던 인물이라는 점을 단초로 하고 있다.그 속에 앉은 작가는 과거 어두운 시절에 교도소에서 풀려난 민주투사의 모습과 '오야붕' 다운 으시댐을 보였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출옥장면을 동시에 떠올린다.

작가의 회고는 상상으로 이어져 전 전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오며 입 주위에 부스러기를 묻히면서 두부를 먹고 있는 환상까지 본다.그러면서 회고록은 많아도 눈물로 쓴 참회록은 보이지 않는 현실을 개탄한다.

아울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는 파스빈더의 영화를 논하면서 '타문화에 대한 이해' 라는 화두가 우리 문학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간접적으로 20세기 후반 우리 사회의 현실과 우리 문학의 정체성에 대해 따지고 있는 것이다.

김윤식 교수는 '저서와 저자 틈에 낀 어떤 환각' 이라는 글로 지난 시대의 어려웠던 사회 현실과 그 속에서 진행된 문학 연구의 성숙과정을 알알이 담고있다.일제하 사회주의 문인단체 '카프' 를 연구하고 출판하면서 일어났던 숱한 일화가 중심이다.

카프를 다룬 저서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가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이야기, 월북문인 김사량 전집을 갖고 있다가 기관에 잡혀가 자술서를 강요받은 일화 등은 문학 연구가 사회 현실과 궤를 같이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노을에 대하여' 를 쓴 신경림씨는 노을과 관련되는 일련의 기억을 통해 우리 현대사와 문학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노을 아래 멀리 중공군이 부는 호적소리가 들리고, 얼빠진 미군 병사들이 애인이나 아내의 사진을 꺼내보며 우는 정경은 한국현대사의 한 토막이자 문학적 토대의 일부분이다.

김병익씨의 '말 뒤에 숨은 말' 은 부산 피난시절 부두에 정박한 배의 불빛과 서치라이트가 무척이나 아름다워보였다는 이야기 등 어린 시절의 일화로부터 시작해 긴 호흡으로 살아온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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