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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민 “천안문 사태? 20년 전 일일 뿐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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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89년 6월에 발생한 천안문(天安門)사태 20주년을 앞둔 1일 오전. 당시 시위대 진압을 위해 동원된 인민해방군의 발포로 수백 명이 희생됐던 천안문 광장 일대는 평소와 크게 다름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장소이다 보니 천안문 주변에는 공안(경찰)이 365일 24시간 순찰을 돈다.

천안문 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창안제(長安街) 지하차도에서는 여느 때처럼 X선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경찰들은 40대 여성의 가방에서 광목 천을 꺼내 들고 “광장에 뭐하려고 이런 것을 들고 왔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대학생들을 비롯해 20년 전 시위대들이 집결해 있던 광장 남쪽의 인민영웅기념비는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돼 있었다. 30도를 넘는 뙤약볕 속에서도 국내외 관광객 수백 명이 광장을 배경 삼아 쉴 새 없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구이저우(貴州)성에서 온 관광객 쉬(徐·31·여)는 “천안문 광장은 평생에 꼭 한 번 봐야 할 관광 명소여서 친구들과 돈을 모아 함께 여행을 왔다”면서도 “천안문 사태에 대해선 뚜렷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에게 천안문 사태는 이미 기억 저편의 역사적 사건이 된 듯했다. 그해 6월 3일 새벽 인민해방군이 시위대를 향해 처음 발포했던 천안문 광장 서쪽 무시디()지하철역 일대는 10월에 열리는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다. 택시기사 겅(耿·47)은 “이미 20년 전의 일인 데다 정치 문제인데 일반 국민과 무슨 상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외신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가 희생된 시위대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마 대변인은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당시 중국 정부의 조치가 옳았음을 일반 국민도 공감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반면 홍콩에선 천안문 사태 재평가를 요구하는 각종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홍콩섬 중심부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중국 애국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홍콩 연대’(支聯會) 주최로 열린 시위에 홍콩 시민 80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재평가를 요구했다. 이날 참석자는 92년 이후 최대 규모였으며 지난해 참석자 990명보다 8배 많았다. 참석자들은 ‘천안문 사태 재평가(平反六四)’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거리 행진을 벌이며 희생자 복권과 중국 민주화 등을 요구했다. 이날 시위에는 전날 입국한 슝옌()이 참석해 “당시 계엄군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여 분 만에 30여 명을 사살했다. 자유와 진리를 지키려는 게 천안문 정신이었으며 이는 아직도 살아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홍콩 대학 학생연맹 소속 학생 수십 명은 1일 오후 4시(현지시간)부터 홍콩 타임광장 부근에서 천안문 사태 희생자와 참석자 복권 및 재평가를 요구하는 64시간 단식투쟁을 했다.

홍콩·베이징=최형규·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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