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전산망 수록 78개 정보, 공개여부도 자유의사 반영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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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퀴즈 하나. 지금 우리가 쓰는 주민등록증은 언제.어떻게 해서 생겼을까요? 정답 - 1962년 간첩과 불순분자 색출을 목적으로 도입됐습니다.만17세가 되던 날의 불쾌한 추억.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한 꾹꾹 지문찍기. 여기엔 지문말고도 병역사항.본적.호주.고유일련번호 등 상세한 개인정보가 담긴다.

무심히 쓰는 주민등록번호엔 생년월일은 물론 성별.출생지.개인고유번호 등이 치밀하게 조합돼 있음을 누가 알까. 주민등록전산망에 수록된 78개 항목 중엔 혈액형.혼인관계.직업.전화번호.학력 등 주민등록법에 규정돼 있지도 않은 개인정보까지…. 사회보장카드 (미국).건강카드 (독일).의료카드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이 시민서비스 제공차원에서 신분등록제도를 운용하는 것과는 출발부터가 다른 탓일 터. 또 주민등록 자체가 강제규정이기 때문에 등록된 정보에 대한 당사자의 의사개입 여지가 전혀 없다.

공개.비공개 여부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는 건 당연. "뭘 믿고 국가에 개인 정보를 이렇게 온통 제공하는지 모르겠다" 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올 만하다.95년 4월엔 정보화사업 추진과제라는 명목으로 전자주민카드 도입마저 발표했다가 얼마전 김대중대통령 당선 후 전면 백지화됐다.

'전자주민카드 시행반대와 프라이버시권의 보호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도 구성돼 '빅 브라더' 의 출현과 개인정보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아주 당연해 보이는 사실이 때론 전혀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OECD 가이드라인 (80년 발표) 조차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실정.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이리도 멀고 험한 것인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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