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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파워 인터뷰

일본 원로정치인 이와쿠니 데쓴도 중의원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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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만난 사람=곽재원 본지 중앙종합연구원장

이와쿠니 데쓴도 의원은 “포스트 경제위기의 글로벌 정치경제체제는 규제 완화가 아 니라 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규제(리레귤레이션)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강조 했다. [시사미디어 정치호 기자]

지난주 한반도는 두 가지 큰 사건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북한의 2차 핵실험이다. 마침 한국을 방문 중이던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파 정치인인 민주당의 이와쿠니 데쓴도(岩國哲人·73) 중의원 의원을 만나 일본의 북핵 대응, 한·일 양국의 경제위기 대처, 세계 경제위기를 낳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안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은 북한 핵실험 사태를 어떻게 보나.

“북한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행을 당한 이런 시기에 조의를 표하면서 한편으론 핵실험을 한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돌아가신 분에게는 조용히 조의를 표하는 것이 상식이다. 일본 민주당 내에선 북한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니 압력을 가하자는 주장이 많다. 자민당에서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는 대화와 압력을 섞어가며 대응했으나 그 이후에는 압력을 가하자는 쪽이 우세하다. 그러나 나는 민주당 안에서 한반도문제연구회를 만들어 북한의 본심을 알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북한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압력과 경제 제재를 가해도 별 효과가 없었지 않은가. 앞으로도 일본이 압력과 경제 제재만 강조한다면 역효과만 날 뿐이다.”

-북한이 계속 핵실험을 하면서 도발한다면 일본 일부에서 핵무장 주장이 나올 수 있을 텐데.

“국민이 그런 안이한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컨트롤하는 것이 정치가의 역할이다. 온 세계가 핵 군비경쟁을 한다면 돈과 기술이 있는 일본이 가장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전 세계에서 핵 피해를 당한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비극을 막기 위해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 앞장서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확산 방지에 열심이다. 오랜만에 부각하고 있는 핵무기 사용 금지의 큰 흐름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한목소리로 세계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일부 일본 우익의 목소리대로 북한의 도발에 자극받아 한국과 일본까지도 핵개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북한에 말리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정치가 경제에 대해 도움이 못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는 정치, 경제에 도움 되는 정치는 어떤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는 자신이 경제를 잘 안다, 경제가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한·일 양국의 두 지도자는 모두 자신이 경제 전문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지 1년 이상 지나도 경제 성적표는 별로 좋지 않다. 물론 그 사이 세계적인 경제 혼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방향을 못 잡고 있으며, 낭비적 요소가 많은 것 같다. 일본은 돈을 쓰고 뿌리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국제회의에 나가면 일본이 1조 엔을 기부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해외에서도 돈을 뿌린다. 이념 없는 예산, 이념 없는 지출이 많다. 통계를 보면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다. 장본인인 미국의 달러보다 한국의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러한 원인은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다.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은 수출을 통해 돈을 벌면 고용이나 복지에도 좋은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들은 세계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일본 국내에는 공장을 세우지 않고 있다. 결국 국내 소비와 고용은 100의 돈을 써도 50의 효과밖에는 없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가계를 생각하며 경기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소 총리가 대기업만 생각하며 경기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문제다.”

-대기업의 경기가 좋아지면 서민생활도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과거에는 그랬다. 대기업의 경기를 살리면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보너스도 받게 되어 돈이 돌았다. 그러면서 소비도 좋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제 시대다. 대기업은 노동력이 싼 곳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 등 다른 나라의 고용 사정만 좋아질 뿐 그 효과가 일본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작은 정부와 시장주의를 근본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는 ‘관료주의의 부흥’ 또는 ‘신마르크스주의의 대두’라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에선 공산당 입당 희망자가 늘고 있지만 마르크스가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은 만화적이고 단순한 발상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조금만 개량하면 신자유주의도 아닌, 그렇다고 공산주의도 아닌 좋은 체제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레귤레이션(신규제)이 그중의 하나다. 미국에서는 규제 완화에 대한 반성이 싹터 리레귤레이션(신규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제 경영자의 눈높이에서 경제를 하는 시대는 끝났다. 디레귤레이션(규제 완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대기업의 눈높이보다는 국민총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이름 없는 소비자들이 경제를 지탱하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정치가들은 모르고 있다. 나는 큰 정부를 찬성한다. 크다는 의미는 공무원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을 늘리자는 것이다. 이즈모 시장 시절 일은 늘렸지만 공무원은 증원하지 않았다. 적은 세금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큰 정부다.”

-한·중·일 정상들의 만남을 더 활성화하고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은.

“많은 지도자가 모인 큰 회의라고 해서 효과가 큰 것은 아니다. 비행기 옆 자리에 앉아 대화를 해도 좋다. 큰 회의보다는 작은 회의를 자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무원들이 회의 준비와 뒤처리로 지쳐서는 안 된다. 의미 있는 정책을 생각하는 회의가 필요하다. 에너지와 돈을 써도 나중에 쓰레기만 남는 회의는 의미가 없다. 지도자들의 진정한 의견 교환 방법을 실용적으로 바꿔야 한다.”

정리=김국진 기자, 사진=시사미디어 정치호 기자

※인터뷰 전문은 이코노미스트 6월 1일자에 나옵니다.

◆이와쿠니 데쓴도=1936년 오사카 출생. 도쿄대 법대 졸업. 미국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부사장을 거쳐 89년부터 어머니와 부인의 고향인 시마네현 이즈모시(인구 10만 명)의 시장으로 8년간 재직하며 지자체 개혁의 선구자로 이름을 알림. 그 뒤 중의원에 4선. 현재 민주당 국제부장으로 ‘클린 정치 그린 경제’를 실천 중. 88년 미국 버지니아대, 99년 중국 난카이대, 2008년 중국 산시대에서 객원교수. 올 2학기부터 부산 동서대 특임교수를 맡을 예정.

▶ [관련 시리즈] 북한 2차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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