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산에 사는 낭만, 산에 사는 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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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산이 좋아 산에 사네
 박원식 지음, 도서출판 창해
415쪽, 1만8000원

 누구나 한번 쯤은 꿈꾸는 삶이 있다. 한적한 들판이나 산에서 텃밭 일구며 유유자적하는 삶이다. 하지만 도시에 중독된 이들에게 꿈은 그냥 꿈일 뿐이다. 유유자적? 더도 덜도 말고 일주일만 혼자 산속에서 지내보라. 지루하고 허전하고 외롭고 무섭고, 무엇보다 끼니를 챙기는 일부터 간단하지 않다. 대단한 수고와 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꿈’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동기는 제각각이다. 충북 보은군 깊은 산속 황토집에서 사는 도종환 시인은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희귀병을 치료하려고 산을 택했다. 입산한 지 5년, 병은 깨끗이 달아났다. 그는 “세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한 덕분”에 병이 나았다고 믿는다. 물론 산 생활은 쉽지 않았다. 혹독한 겨울나기를 끝낸 봄날, 진달래꽃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서울토박이인 김종수씨도 정선 민둥산 자락에 들어가 병을 고쳤다. 그는 관청에서 전기를 넣어준대도 거절한 철저한 ‘반전(反電)주의자’다. 오대산 기슭에서 사는 소설가 김도연은 가축들과 이야기하는 습관이 들었다. 여자에게 바람맞은 사연도 소에게 하소연한다.

언론사 기자, 컴퓨터 회사 중역으로 잘 나가다가 훌쩍 떠나 평창 흥정계곡에 들어간 이대우씨의 동기는 “내 멋대로 살고 싶어서”였다. 그는 “산중생활을 하려면 늦어도 체력이 있는 40대에는 시작해야 한다”며 “아내의 동의가 필수”라고 충고한다. 전직 교사인 한옥 전문 목수 김길수씨는 다섯 식구가 중고버스에서 생활하는 특이한 경우다. 살림용으로 개조한 버스를 타고 추울 때는 남쪽, 더우면 북쪽으로 전국의 산골·계곡을 순례하며 산다. 일감이 생기면 작업장 근처에 버스를 세워놓고 지낸다.

지리산은 워낙 품이 넓은 산. 저자는 이 산에 대략 3000명의 은자(隱者)들이 산다고 말한다. 무속인·예술인·귀농인·수행인…. 가히 ‘낭인들의 해방구’다. 그러나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건강한 낭인들이 드물다”며 “장삿속이 앞서고 사기꾼도 많아 지리산은 이제 쑥대밭으로 변했다”고 탄식한다.

산속 생활비는 얼마나 들까. 이대우씨 부부는 월 70만~80만원, 강원도 영월의 유승도 시인은 세 식구는 월 60만~70만원 정도 쓴다고 했다.

저자는 “산속도 또 하나의 치열한 세간”이라고 말한다. 유유자적이 보장될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원규 시인도 “돈 좀 가지고 들어온 이들은 대부분 무너지더라”며 “산에서 살아남으려면 잔머리 굴리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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