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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무대’ 밟은 게 승리 …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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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챔피언스리그 맨유와 바르셀로나의 결승전이 열린 27일 밤(현지시간, 한국시간은 28일 새벽) 로마 올림피코 스타디움. 10만 명의 관중이 꽉 들어찬 가운데 챔피언스리그 공식 주제가가 울려퍼지고 내 아들이 입장할 때 정말이지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너무 뭉클해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선수 가족석에 앉아 옆에 있는 다른 가족들을 보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지난해 모스크바 결승전 때의 쓰라린 경험 탓에 ‘올해도 혹시 엔트리에서 누락되면 어쩌나’ 하고 조바심했는데 퍼거슨 감독이 결국 약속을 지켰다. 바르셀로나에 지는 바람에 우승은 놓쳤지만 준우승 메달이면 어떤가. 아비 입장에서는 아들이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견주며 뛰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만족스럽다.  

#야속한 피케

전반 2분 호날두의 프리킥이 바르셀로나 GK 손에 맞고 나오자마자 지성이가 뛰어드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성이가 오른발로 슛하던 순간에는 나도 온몸에 있는 힘을 다 줬는데 아쉽게 막히고 말았다. 지성이의 슛을 태클로 막은 친구가 헤라르드 피케라는 것을 알고서 웃음이 났다. 피케는 지난 시즌까지 맨유에서 지성이와 함께 뛰던 친구다. 지난해 모스크바 결승전 때 지성이와 함께 엔트리에서 탈락해 관중석 우리 옆자리에서 경기를 관람했던 친구다. 당시 우리 부자는 실망이 보통이 아니었는데 피케의 얼굴 표정은 너무도 태연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러더니 피케는 6일 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그 소식을 듣고는 ‘사회는 참 냉정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성이와 동병상련을 겪던 친구가 1년 만에 적수로 나란히 결승전 선발로 나선 것도 묘한 인연인데, 하필 지성이의 결정적인 슛을 막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피케가 야속했다. 

#긴장했지만 좋은 경험

산전수전 다 겪은 지성이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긴장한 것 같았다. ‘지성이가 큰 실수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지난해 지성이가 결승전에 나서지 못했을 때 나는 이렇게 아들을 위로했다. “페널티킥을 실축해 첼시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쓴 존 테리처럼 되느니 차라리 안 뛰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올해 결승에서는 크게 잘못하는 일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랐는데,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무난했다는 생각이다. 맨유 팬들이 경기 초반 지성이 응원가를 불러주고, 후반 21분 베르바토프와 교체될 때 박수를 쳐주는 모습에 위안을 삼았다.

#아시아인 최초로 결승전 무대에

지성이가 유럽에서 이렇게 관심을 많이 받기는 처음인 것 같다. 평소에는 잘 다루지 않던 지성이 기사가 연일 영국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오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시아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을 얘기한다. 지난해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는 스토리 때문에 더 흥미로운가 보다.

사실 지성이는 “아시아인 최초라는 말들은 기자들이 좋아하는 거지 자신은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그걸 내 아들이 해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알아보니 챔피언스리그가 창설된 게 1955년이었다고 하니 54년 만에 처음으로 이룬 것 아닌가. 큰일을 해냈음에도 지성이가 시상식 때 준우승 메달을 받으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안쓰러웠다. 지난해에는 우승을 하고도 엔트리 탈락으로 맘껏 웃지 못하더니 올해는 선발로 나서고도 웃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못 올 것 같던 기회가 1년 만에 다시 왔듯이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기회는 또 오게 마련이라고 믿는다. 지성이에게 “기회는 또 온다. 다음에는 웃자”고 말했다.

#도전은 멈추지 않고

지난 2월 런던에서 풀럼에 0-2로 패한 뒤 한국 대표팀 합류를 위해 히스로 공항으로 함께 이동하던 길이었다. 리버풀전 대패에 이어 당한 2연패라 답답한 마음에 “퍼거슨 감독은 왜 호날두를 안 빼냐. 오늘은 정말 못하던데”라고 아들한테 넌지시 물었다. 지성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버지! 허정무 감독님이 이란전에서 날 안 뺀 것하고 똑같은 거예요”라는 답변이었다. 이란 원정 경기를 TV로 지켜보면서 나도 “지성이가 몸이 안 좋구나. 차라리 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성이에게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인터뷰한 이란의 네쿠남이 골을 넣었을 때는 “아이쿠! 내일 신문 제목이 ‘박지성, 네쿠남에 완패’ ‘박지성 지옥, 네쿠남 천당’으로 나오겠구나” 싶어 걱정도 했다. 그럼에도 끝내 동점골을 넣는 걸 보면서 팀 내 주축 선수의 숙명이라는 걸 느꼈다. 오늘 골을 넣지 못하고 메시에게 당한 호날두도 그런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렸을 거다. 지성이가 빨리 훌훌 털어버릴 거라 믿는다. 실망하기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지성이는 맨체스터에 잠깐 들러 짐을 챙긴 뒤 곧바로 두바이로 날아가 한국 대표팀에 합류한다. 이제는 대표팀 주장으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큰일을 해내야 한다. 이 글의 제목처럼 지성이의 도전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박지성의 멈추지 않는 도전’에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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