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난무하는 실업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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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실업자 대책이 입안단계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부터 만들어내고 있다.재원 (財源) 마련, 사업 선정, 관장 (管掌) 기관이 결정되지 않은 채 근거 없는 숫자의 성찬 (盛餐)에 지나지 않는 대책 과잉 현상이 빚어내는 혼란이다.

실업대책은 당면한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 작업이 치러야 할 피할 수 없는 비용이다.

실업 인구가 올해 2백만을 넘어서리란 우울한 예측이 이미 현실로 접근하고 있다.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도 실업문제가 최대 중점 과제임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 바람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부서는 다투어 실업대책 사업과 재원마련 방안을 제가끔 내놓고 있다.화재 (火災)가 났을 때 훈련되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 진화작업에 나선 것과 비슷하다.

불을 끄느라고 생긴 혼란은 혼란대로 번지고 불은 불대로 타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미 정부예산에 재원이 확보돼 있는 경우에는 각 부서가 서로 이 재원을 차지하려고 비슷한 사업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바람에 이들을 모두 합치면 실직자들에게는 사업금액이 수배로 늘어난 것으로 들린다.기획예산위는 각 후보 사업의 타당성을 신속하게 검토해 실업대책 사업리스트와 그 관장기관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재원 마련까지 한 패키지에 담은 대책도 나오고 있다.

올해 94조원을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자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안이 그 대표적 사례다.그런데 그 재원으로는 '대폭적 규제완화' 를 통해 끌어들일 '민간자금' 을 꼽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이런 여유 자금이 민간에 있다면 실업대책 같은 것은 아예 세울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정부는 중구난방 (衆口難防) 격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각 부서의 실업대책부터 우선 제어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믿을 수 없는 숫자를 쏟아내는 것은 정부의 '신인도' 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종내엔 실업대책 자체를 표류하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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