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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고려 범' 찾아 백두대간 10여년 누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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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동물도감에 '시베리아 아무르 티그로(시베리아 호랑이)'로 명명돼 있는 호랑이의 원래 이름은 우리나라 백두대간에 서식하는 '고려 범'입니다. 빼앗긴 이름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호랑이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10여년간 백두대간을 누비며 호랑이 찾기에 매달려온 임순남(49) 한국 야생호랑이.표범 보호보존연구소장. 그가 15일 서울에서 열리는 'DMZ(비무장지대) 포럼 국제회의'(DMZ 포럼.경기도 공동주최)에서 'DMZ 접경 지역의 한국 호랑이 생존 여부 탐사결과 보고'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한다.

임 소장은 "남한에는 호랑이가 없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백두대간에는 여전히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남한 호랑이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남북이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라 근친 번식을 해야 하므로 멸종 위험이 크다"며 "멸종을 막으려면 DMZ 철책의 일부를 열어 호랑이들의 이동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 소장이 한국 호랑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4년. 고교를 졸업하고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한 기회에 '러시아에 호랑이 300마리가 서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이때 호랑이 연구에만 30여년을 종사해온 드미트리 피크노프 박사를 만나 호랑이 서식생태 조사법을 배웠다. 피크노프 박사는 지금까지 임 소장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남한 내 호랑이 찾기에 나섰다.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 4년여 전국의 산하를 누빈 끝에 강원도 화천에서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후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목격 당시의 상황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남한서는 호랑이가 멸종됐다고 믿는 많은 사람과 달리 그는 아직도 생존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야생 호랑이 박사' 임 소장의 이름은 국내보다 외국에 더 알려져 있다. 그는 유엔 두만강 환경워크숍(99년), 중국 북부 호랑이 국제 워크숍(2000년) 등 호랑이와 관련한 각종 국제행사에 한국 측 단골 인사로 참석하고 있다. 최근엔 러시아 측에서 "남북한과 러시아, 3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호랑이 보호운동을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 호랑이 찾기 운동은 개인 차원에서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세계인과 같이 해나가야 할 일"이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너무 무관심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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