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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행적 비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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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뒤 발견되기까지는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5시45분 봉하마을 사저에서 유서를 저장한 직후 “산책을 나갈게요”라며 이병춘 경호관에게 연락, 2분 뒤 산행에 들어갔다. 등산로 입구에선 마늘밭에서 일하던 동네 친구 박모(63)씨를 만나 “일찍 나왔네요” “마늘 작황이 어떻노”라며 인사를 나눴다.

산행 도중 정토원에서 100m쯤 떨어진 지점(봉수대 0.37㎞ 이정표)에 도착하자 “힘들다, 내려가자”고 경호관에게 말했다. 경호관은 사저 경호실(CP)에 있는 신모(38) 경호관에세 “하산하신다”고 무전 연락을 했다. 하산 중 오전 6시10분 부엉이 바위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사나” “담배가 있나”라고 물었다. 경호관이 “없습니다. 가져오라 할까요”라고 답했지만 “됐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닌 흔적을 보고 “사람이 다니는 모양이네”라고 말했고, 부엉이 바위보다 5m 정도 뒤에 있는 묘지 옆 잔디밭에 앉았다.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법사가 있는지 보고 오지”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경호관이 “모셔올까요”라고 하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봐라”고 지시했다.

경호관은 정토원으로 뛰어갔다. 이때가 오전 6시14분. 정토원 공양관 앞에 도착한 경호관은 법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뛰어서 되돌아왔다. 부엉이 바위에 도착한 시간은 3분 뒤인 6시17분. 그러나 자리를 비운 3분 사이에 노 전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이 경호관은 갖고 있던 휴대전화로 CP의 신 경호관에게 연락했다. “심부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는다. 나와서 내려오시는지 확인 좀 해라.” 이 경호관도 마애불·부엉이 바위 능선길 등 일대를 뒤졌다. 6시23분 신 경호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찾았나, 안 보이나”라고 물었고, 신 경호관은 “안 보인다”고 했다. 또 “저수지나 연꽃밭 쪽을 찾아봐라”는 통화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을 찾다가 정토원 요사체 앞에서 만난 법사가 “무슨 일이지, VIP(노 전 대통령) 오셨어”라고 묻자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부엉이 바위에 뛰어온 이 경호관은 부엉이 바위 밑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로로 내려가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흰옷을 발견했다. 산 아래쪽을 보고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도 찾았다. 이때가 6시45분. 노 전 대통령이 사라진 지 31분 만이다.

이어 이 경호관은 “차를 대라”고 CP에게 연락했다. 얼굴을 흔들어 보고 맥박을 확인했으나 뛰지 않았다. 우측 어깨에 노 전 대통령을 메고 66m가량 뛰어 내려와 두 차례 인공호흡을 시도하자 차가 도착했다. 대통령을 안고 뒷좌석에 앉아 진영읍 세영병원으로 옮겼다. 다시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진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30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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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수사 논란=이 경호관은 1991년 경호원 공채로 채용돼 노 전 대통령 취임 당시부터 경호했다. 2008년 노 전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봉하마을에서 계속 경호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 경호관은 그동안 4차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엇갈린 진술을 했다. 이 경호관은 “사건 발생 직후 요인을 완벽히 지키지 못했다는 충격과 신분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허위 진술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초기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경호관의 무전기 교신 기록, 청와대 경호실의 CCTV(폐쇄회로TV) 화면, 정토원 법사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창원=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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