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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사막국가 사우디 "비가 무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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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자동차들이 지난달 29일 물에 잠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 [제다 AP=연합]

사막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비다. 일년 내내 볼 수 없는 비가 한번 크게 내리면 엄청난 재앙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사우디인들은 이를 다시 경험했다. 홍해에 인접한 남서부 지역과 제다시에 내린 집중호우로 41명이 숨지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제다 시내에선 한 건물이 무너져 어린이 4명이 깔려 죽기도 했다.

사우디에선 겨울에 크고 작은 비가 내린다. 특히 남부와 서부지역에선 바다 위에서 형성된 수증기가 내륙으로 이동하다가 고원지대를 만나면서 수년에 한번쯤 시간당 100㎜의 폭우가 내리기도 한다. 주민들이 "빗방울이 주먹만 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때마다 사우디 도시들이 홍수로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홍수 대비 시설이나 예방책이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특별한 관을 통해 정수처리돼 바다나 계곡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빗물을 배출할 수 있는 도로용 하수시설은 없다. 석유부국인 사우디가 돈이 없어 못 만드는 것이 아니다. 1년 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하수도가 한두 달 만에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와 쓰레기로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메카 등 일부 지역에 몇 차례 하수시설을 만들었지만 헛수고였다. 도시 내 저지대에선 조금만 비가 많이 내리면 한두 시간 만에 수위가 5~10m까지 올라간다. 빗물이 하수도가 아닌 땅위로만 모두 흐르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은 무너지기 일쑤다.

사우디 정부는 겨울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메카 주변 파티마 와디(건천)에 2000만㎥의 물을 담수할 있는 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기습 폭우는 여러 방향에서 건천을 따라 급격히 메카로 흘러들기 때문에 홍수 방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기습 폭우의 피해는 사우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중동국가에도 빗물 대비용 하수시설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내 여러 지역도 홍수로 물에 잠겼다. 요르단.이란 등 비교적 중동 내 북부에 위치한 국가에서는 겨울에 많은 눈.비가 내려 학교와 공공기관이 휴무에 들어가기도 한다. 남쪽의 이집트에서도 홍수 피해는 매년 발생한다. 1994년에는 중부에 위치한 아시유트시가 물에 잠기면서 50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들 국가 주민들도 비가 오면 사우디인들처럼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하수시설을 만들 수도 없는 중동의 사막 기후에 큰 비가 내리지 않기를 알라에게 매년 기도할 뿐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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