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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무기수출 의심 선박’ 한국이 공해서 직접 검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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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26일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에 정식 참여키로 함에 따라 국제사회의 핵·미사일 관련 기술·장비의 불법유통 차단 움직임에 힘이 붙게 됐다.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으로 PSI 체제에 정면 도전해온 북한을 견제할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등은 대북압박에 필수적인 한국의 참여를 희망해 왔다. 전면 참여 선언으로 PSI 체제에서 한국의 위상 변화와 함께 실제 활동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예고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26일 휴전선 비무장지대 인근 지역인 경기도 파주시의 한 도로에서 한국군 자주포들이 수송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전면 참여를 선언했다. [AP=연합뉴스]

우선 이번 결정으로 한국은 ▶역외 차단훈련을 위한 선박·항공기 지원 ▶역내 차단훈련에 대한 물적 지원 ▶PSI 정식 참여 등 그동안 피해온 3개 항과 관련된 활동이 가능해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훈련 참관단 파견과 브리핑 청취 등 옵서버 자격으로 5개 항에 참여한 데서 성큼 나간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모든 활동에 참여할 의무는 없지만 실제 차단훈련을 포함한 PSI 8개 항에 전면적 참여를 하게 됐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활동 내용에도 큰 차이가 있다. 그동안 한국이 관여할 수 있던 건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우리 영해를 통과하는 북한 선박뿐이었다. 2004년 8월 채택한 해운합의서는 ‘무기 및 그 부품의 운송’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동해와 서해 항구 간을 오가는 북한 선박만을 대상으로 한 데다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질·장비를 내항운항 선박에 실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번 전면 참여로 북한 항구와 제3국 사이를 오가는 의심 선박에 대한 승선 검색 등이 이뤄질 경우 여타 PSI 회원국과 함께 우리 정부의 참가가 가능해졌다. 북한이 보유한 380척의 대형짐배(상선)뿐 아니라 북한을 드나드는 제3국의 의심 선박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해상에서의 선박 검색이 국제법상 위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차단의 시급성에 공감한 전 세계 95개국이 참여하는 국제규범인 PSI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추세다. 북한이 핵·미사일 관련 불법 수출입 행위를 할 경우 공해상 차단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핵 확산이나 테러 관련 정보를 PSI 참가국들과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정부가 기대하는 대목이다. PSI는 출범 이후 지난 6년 동안 다양한 참가국 회의를 열어 관련 정보와 차단기술 등을 교류해 왔다. 또 37차례에 이르는 차단훈련을 통해 공조체제를 강화해 왔다.

국제사회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관련한 한국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게 된 것도 변화다. 정부 당국자는 “상당수 국가가 참여한 PSI 참여를 미루면서 국제사회에 핵·미사일 관련 대북제재를 요구해온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 일각에서 곱지 않은 시각이 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PSI 전면 참여로 남북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그래서 정부는 불필요한 남북 간 긴장을 피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당국자는 “의심 북한 선박이나 북한 항구로 향하는 배를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해상 검색할 경우 한국의 직접 참여는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한다. PSI는 차단작전 등을 벌일 경우 대상 선박의 해당 국가는 가급적 배제하고 제3국이 맡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북한과 이해당사국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한다. 국방부는 유사시 직접적인 검색·차단은 해경이 나서고 해군은 필요한 지원을 하는 남북 해운합의서 방식도 검토 중이다.

이영종 기자

◆대량살상무기(WMD)=핵·미사일·생화학무기를 포함해 대규모의 인명 살상을 불러올 수 있는 무기체계를 일컫는다. 인류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화학무기금지조약(CWC) 등 국제협약을 통해 개발을 막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라크·이란·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통제·확산 방지가 국제적 이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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