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무기력한 패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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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결승 1국> ○·쿵제 7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제19보(146~151)=비록 바둑 한 판이지만 옥쇄의 결단을 내린다는 건 어렵다. 무엇보다 초읽기가 방해물이다. 옥쇄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마지막 10초, 하나 둘 셋…” 하고 추궁해 오는 초읽기. 쿵제 7단도 여기에 질려버린 듯 고개를 저으며 148로 뻗고 말았다. 그 순간 이세돌 9단의 손끝에서 물 찬 제비 같은 149가 사뿐히 떨어졌다. 이 판을 지켜보던 수많은 고수는 일제히 이 149를 승부의 종착점으로 지목했다. 148은 정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무기력한 패착이었다. 이미 밝힌 것처럼 백은 A 선까지 쳐들어가야 승부를 기약할 수 있는데 148은 그걸 포기했다. 승부를 포기한 것이다. 149는 참 맛 좋은 곳. 이 한 수로 꺼림칙하던 중앙의 뒷맛이 모두 사라졌다. 이세돌 9단도 개운했을 것이다.

백은 ‘참고도’ 백1로 뚫고 나가 7로 젖히든가 아무튼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저항해야 했다. 때가 좀 늦은 탓에 백이 B로 끊겨 다 죽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 하나 이렇게 전면 옥쇄 전법으로 나오면 우세한 흑은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고 어느 한순간 양보의 마음이 깃드는 순간 흔히 보아 온 역전의 드라마는 시작되는 것이다.

148은 계가를 생각한 수이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C의 곳만은 일단 뚫고 봐야 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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