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본 중앙은행에 '인사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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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일본 총리는 16일 저녁 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자민당 간사장을 총리 관저로 긴급 호출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20분 동안 줄담배를 피우며 침묵을 지키다 신임 일본은행 간부 명단을 건네줬다.

'총재 하야미 마사루 (速水優.72) - 부총재 후지와라 사쿠야 (藤原作彌.61)' . 자민당을 책임지고 있는 그가 책임지고 국회동의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가토 간사장의 표정은 일순 굳어졌다.

대장성 사무차관 출신과 일본은행 부총재가 번갈아 맡아왔던 지난 20년간의 일은총재 인사관행을 뒤엎은 파격적 인사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마쓰시타 야스오 (松下康雄) 전 일은총재가 중도 사임 의사를 밝힌 뒤 하시모토 총리는 고민을 거듭했다.

특히 '접대 비리' 로 대장성.일은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고 있음을 의식, 내부승진을 일찌감치 배제했다.

국제 금융시장은 지난 1월부터 불과 두달새 대장상과 대장성 사무차관, 일은 총재와 부총재 등 금융시스템 수뇌부가 모두 물러나 극도로 불안스러워 하고 있었다.

'개혁과 신뢰 회복'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하시모토가 꺼내든 절묘한 카드가 하야미 - 후지와라의 조합. 하야미 신임총재는 81년까지 34년 동안 일본은행에서 근무한 정통 '일은맨' .국제담당 이사까지 역임한 국제금융통으로 꼽혔다.

그러나 81년 일은을 떠난 하야미는 장인이 설립한 종합상사인 닛쇼이와이 (日商岩井) 로 옮겨 전무.사장까지 올랐다.

재계는 하야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91년 경제동우회 (한국의 經總) 대표간사로 추대했다.

간사 취임 간담회에서 하야미는 "일본 정치권은 철학이 없다" 는 직격탄을 날려 정치권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지지 (時事) 통신에서 일은을 담당했던 후지와라 신임부총재는 금융전문기자 출신. 워싱턴 특파원.해설위원장을 거친 그의 현 직책은 해설위원실 고문. 일 금융계는 기자출신 부총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지난 94년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출신인 루퍼트 페난트 레아를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 금융개혁을 무리없이 마무리하는 데 성공한 전례가 있다.

신임 일은 총재단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17일 엔화는 달러당 1백29엔대에서 안정된 움직임을 보였고 주가도 급속한 하락을 멈추었다.

미국도 하야미총재가 '엔화강세론자' 라는 사실에 흡족해 하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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