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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채용 시름 덜고 새 사업 펼칠 수 있게 됐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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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27면

인턴 연구원 장진원씨(왼쪽 아래)가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손성훈 박사(위쪽), 정화지 젠닥스 사장과 함께 효소 실험 결과를 분석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 대전바이오벤처타운에 있는 ㈜젠닥스. 2005년 설립된 임직원 9명의 이 ‘미니 회사’는 농·축산물 이력 추적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스타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 회사는 한우의 생산 이력을 검증할 수 있는 개체 식별 키트를 국내 독점 생산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출신으로 2007년 8월 젠닥스에 영입된 정화지(여·52) 대표는 “간단히 말해 쇠고기 샘플 1g만 있으면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수입 쇠고기나 젖소 고기인지, 한우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젠닥스는 지난해 이 키트로 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그 다음’이 고민이었다. 정 사장은 “이 제품으로 회사가 당장 먹고사는 데는 문제없지만 5, 10년 뒤가 걱정이었다”며 “신수종 사업을 궁리한 끝에 지난해 바이오 에너지 R&BD(사업화연구개발)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산·연 연계 인턴 현장을 가다 <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 회사가 앞으로 10년 뒤를 생각하면서 투자하는 분야는 바이오 에탄올 사업이다. 정 사장은 “노보자임·제넨코 같은 다국적 기업이 바이오 에탄올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수입 대체 효과만 해도 연간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회사는 갈대·억새풀이나 팜오일 부산물에서 바이오 에탄올을 추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여기서 핵심이 효소 개발이다. 갈대나 억새풀로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하려면 반드시 당화 과정(전분·섬유소 같은 다당류를 효소의 작용에 의해 단당류 또는 이당류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경제적이면서 효과가 뛰어난 효소를 개발하는 게 필수적이다. 젠닥스로서는 연구 인력이 한 명이라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 사장은 올해 초 충남대 대학원을 졸업한 장진원(26)씨를 채용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분자미생물학을 전공한 장씨는 다양한 당화 효소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장씨도 여느 졸업생처럼 취업 문제로 고민했었다. 대학원 공부에 몰두하다 보니 이른바 ‘스펙’이 화려하지 못한 데다 취업 정보에도 둔감했던 탓이다. 장씨는 1년여를 투자해 스펙을 만든 다음 대기업에 취직하기보다는 벤처기업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취업 공백 기간이 생기는 것보다 낫겠다 싶었어요. 제가 원하던 일자리이기도 하고요. 교수님의 추천으로 올 초부터 젠닥스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마침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산·연 연계 인턴을 선발하는 중이었고, 젠닥스는 장씨를 이 프로그램에 참여시켰다. 젠닥스는 이 연구원과 공동으로 ‘당화 효소 저가 생산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정 사장이 “우리는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3월부터 장씨는 주중에는 생명공학연구원으로, 토요일에는 젠닥스로 출근하고 있다. 연구원에서는 시스템미생물연구센터의 손정훈(48이학박사) 책임연구원과 함께 일한다. 손 박사는 당화 효소 분야의 국내 일인자로 꼽힌다. 장씨는 손 박사의 연구 활동을 보조하면서 회사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장씨는 “요즘 미생물을 이용해서 효소를 대량 생산하는 과제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장씨의 업무능력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손 박사는 “아직 두 달밖에 안 돼 칭찬하기엔 이르다”면서도 “아이디어가 많다”고 은근히 띄워준다. 정 사장은 “토요일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꼼짝 않는 성실파”라고 치켜세웠다.

인턴을 받아 성가시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 박사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서 ‘연구개발(R&D) 멘토’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지금은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돈을 버는 연구’를 하는 시대다. 기업과 함께 일하는 덕분에 시장 트렌드를 더 빨리 읽을 수 있어 유리한 측면도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도 기업과 나라의 R&D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 아닌가. 더욱이 요즘같이 청년 실업이 심각한 때 연구기관도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게 된다. 공공적·전문적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장씨는 연구원에서 받는 인턴 수당(월 150만원) 외에 회사에서도 별도의 보수를 받는다. 그는 “얼마 전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더니 ‘이제 철들었다’고 칭찬받았다”며 웃었다. 운전면허증을 따 한 달 전엔 300만원짜리 중고차도 구입했단다.

정 사장은 산·연 연계 인턴제가 벤처기업엔 꼭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학생이 많은데 우리같이 작은 회사는 사원모집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거의 없다.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도 숱하게 봤다. 연구원에서 공짜로 트레이닝을 시켜주면 중소·벤처기업에 연구 인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생명공학연구원엔 산·연 연계 인턴이 장씨 외에 8명 더 있다. 숭실대 생명공학과 출신인 권용국(26)씨는 연구원 내 바이오벤처타운에 있는 ㈜오믹시스에 채용된 상태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집이 경기도 안양인 권씨는 연구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생물종을 판별하는 ‘바이오 마커’의 상용화 기술을 연구하는 중이다.

권씨를 지도하고 있는 김석원(46) 선임연구원은 “세포 내 물질은 특정 파장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원리를 응용한 연구”라며 “예를 들어 풍기 인삼과 강화 인삼의 다른 점을 구별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 연구원은 “권씨가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능숙하게 다뤄 연구자료 통계 분석까지 도맡아 해 1인 2역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원엔 9명의 산·연 연계 인턴과 함께 연구원 자체 선발 인턴 34명도 근무 중이다. 이들 43명은 오는 12월까지 인턴으로 일한다. 산·연 연계 인턴은 연구 진척 상황에 따라서 인턴 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으며, 이후 본인을 채용한 회사로 복귀하게 된다. 반면 연구원 자체 선발 인턴은 인턴 기간이 끝난 뒤 개별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연구원 측은 “연구원 자체 선발 인턴의 일자리를 알선하기 위해 기초기술연구회 차원에서 취업박람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연 연계 인턴제와 관련, 준비 기간이나 목표 설정 등 아쉬운 대목도 있다는 지적이다. 손 박사는 “갑작스럽게 인턴 제도가 시행되다 보니 구체적인 프로젝트 없이 시간만 때우는 경우도 가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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