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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코네, 그 이름만으로도 영상이 떠오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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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22면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긴 필름을 연 중년의 토토. 꼬마 토토가 그토록 갖길 원했던 잘린 필름 조각들이 흑백 영상으로 흘러나온다. 신부님이 잘라낸 키스 장면과 첫사랑 엘레나와의 추억. 이 장면에서 감미롭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러브테마’ 선율에 눈물이 맺힌 건 ‘시네마천국’ 속 중년의 토토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26일 서울서 공연하는 81세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81·사진).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화음악의 거장(巨匠)이다. 영화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그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적어도 문명사회엔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황야의 무법자’(1964년), ‘알제리 전투’(65년), ‘석양의 무법자’(66년), ‘천국의 나날들’(78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84년), ‘미션’(86년), ‘언터처블’(87년), ‘시네마천국’(88년·작은 사진), ‘벅시’(91년), ‘시티 오브 조이’(92), ‘러브 어페어’(94), ‘피아니스트의 전설’(98), ‘말레나’(2000년)…. 아름다운 음악이 그의 것이었다.

올해 여든한 살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한국에 온다. 26일부터 이틀간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서다. 한국 방문은 2007년에 이어 두 번째. 중앙SUNDAY가 방한 직전 로마에 머물고 있는 엔니오 모리코네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좌파감독과도 작업, 이념엔 공감 안 해
1928년생인 엔니오 모리코네는 본래 로마의 산타체칠리아음악원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다. 영화음악에 손을 댄 것은 30대에 접어든 60년대부터다. 세르지오 레오네(89년 작고) 감독을 만나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영화음악을 히트시키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정통파 음악학교를 다니다가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웠고 돈을 벌어야 했다. 초기에 만든 곡들은 부족한 것이 많았고 나는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족하지 않는 작품에는 가명을 사용하기를 즐겼다.”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황야의 무법자’에 대해 그는 “세르지오 감독의 최악의 영화이자 나에게도 최악의 음악”이었다고 평한 적이 있다. ‘황야의 무법자’ 초판 자막에 그의 이름은 ‘레오 니콜스’로 올라온다.

-초창기부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내 음악이 그의 영화에 잘 어우러졌다. 레오네 감독의 자질은 감독으로서 어떤 것이 영화에 맞는지 잘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레오네 감독은 음악적인 방향을 제시해 줄 만한 아이디어를 특별히 가지고 있지 않아 특별히 이렇게 해달라는 것이 없었다.”

둘의 인연은 레오네 감독의 마지막 작품까지 계속됐다. 레오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같은 좌파 감독들과도 영화음악을 만들었는데.
“굳이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파졸리니가 감독한 ‘소돔, 120일’ 음악 작업을 할 때 나는 작업에 만족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파졸리니 감독은 내가 충격적인 영화의 내용을 알게 되면 작업을 중단할까봐 나에게 영화 전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극장에서 그 영화를 봤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미션’ 땐 아카데미상 받을 줄 알았는데
-할리우드의 많은 감독과도 작업을 했는데 어떤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았나.
“나는 영화음악을 만들 때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감독과는 일하지 않는다. 내가 영화의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쇼팽 같은 스타일을 원한다’고 한다면 나만의 영감을 방해하는 것이니까.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은 음악과 작곡가들을 진심으로 이해해 줬다. 나와 음악적 관점이 다르면서도 존중해 주는 점이 좋다. ‘언터처블’의 작업 시절, 주인공을 위한 개선 행진곡을 쓰면서도 사실 그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에게 곡들을 모아 보내면서 ‘이 곡만큼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은 바로 그 곡을 메인 테마로 사용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영화와 너무 잘 맞았다.”

-다섯 번이나 아카데미 음악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미션’이 오스카 후보로 올라갔을 때 상을 받을 줄 알았다. 오스카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어느 한 작품을 뽑아 상을 받는 것보다 내 평생의 작업과 공로를 인정해 준 공로상(2007년) 자체가 매우 영광스럽다.”

-‘미션’이 당신의 영화 음악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음악인가.
“이건 수많은 내 자식 중 누가 가장 예쁘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 소리를 음악에 섞는 실험 좋아해
-영화음악에 ‘소리’를 섞곤 했는데.
“나는 실제 소리와 음악적인 소리를 섞어 만드는 실험적인 작업을 좋아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노스텔지아(향수)’를 표현하기 위해 휘파람 소리·종소리 등의 사운드를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코요테 등 동물의 소리를 사용해 보고 싶었고 결국은 그것이 영화의 메인 테마가 되었다. 음악적인 아방가르드(혁명적 예술경향 또는 운동)를 경험하면서 산출되는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당신의 음악적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 것인가.
“음악을 만드는 영감(의 원천)에 대해 묻는다면 그건 (답이) 미스터리다. 어쩌면 두뇌에서 올 수 있고 내가 공부한 이론에서도 올 수 있다. 또 내 개인적 사랑과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영화 그 자체에서도 올 수 있다.”

한국팬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 인상적
-영화음악을 만드는 방식은 어떤 것인가.
“주로 영화의 스크립트를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나는 어떤 영화건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감독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스타일을 알기 때문이다. 미리 작업된 영상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스토리를 받으면 거기에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든다.”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얻기 때문에 ‘피아노 앞에서 작곡하는 게 아니라 책상에서 작곡한다’고 말했었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트럼펫을 배웠기에 피아노 연주에 능숙하지는 못하다. 중요한 건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며,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악보로 그려나가느냐는 것이다.”

-영화음악이 영화를 추월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많은 영화에서 당신의 음악은 영화의 주인공이 돼버렸다.
“영화음악은 영화를 완성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에 그 감동을 증폭시켜 주는 배경 음악이 없다면 그 영화는 그만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힘들 것이다.”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하는데, 한국에 왔을 때 받은 인상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볼 때 한국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고 느꼈다. 서울이 로마와 비교했을 때 매우 큰 도시라고 생각했다.”

-400편이 넘는 작품을 작곡했는데.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과 비교한다면 나는 아직도 그리 많은 작품을 쓴 것이 아니다. 로시니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단 15일 만에 작곡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비하면 나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영화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언제 어디서 내 음악을 들어도 나의 이름뿐만 아니라 영화의 장면까지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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