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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부실누적과 금융시스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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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실채권의 급증추세가 예사롭지 않은 파급영향을 가져올 것 같다.

위험수준에 이른 부실채권의 급증은 과거 누적됐던 금융시스템 기능부전 (不全) 의 결과다.

은행의 기업 감시기능, 금융당국의 금융기관 감시기능, 증권 중개기관의 비도덕성과 비효율성, 공공자금 운용의 비효율성 모두가 겹쳐 진행된 결과다.

거기에다 근래에는 국내수요가 위축되면서 투자수익성은 한층 낮아진 기업들이 높은 부채구조속에서 갑자기 올라가는 이자부담을 보충할 방법이 없게 된 때문이다.

어음부도율이 몇달째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게 당연하다.

상장기업의 매출액대비 금융비용이 97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5%대이던 게 올 상반기엔 7.5~8% 수준으로 예상되는 판이니, 어지간한 기업은 부채원리금 상환이 어렵고 부실채권은 빠른 속도로 불어날 뿐이다.

금융비용 급증은 금융기관들의 대출기피와 기업자금수요의 급팽창에 기인한다.

지난 몇개월간 자금공급 측면에서 회사채 발행과 외국자금 증대가 돋보였으나 국제통화기금 (IMF) 프로그램에 따른 긴축적 통화공급에다 금융기관의 신용창조기능 축소에 따른 영향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던 모양이다.

94년이래 2.5내외이던 통화유통속도는 근래 2.2까지 떨어질 정도다.

그나마 외국자금은 주로 단기 국공채 주변에만 맴돌아 기업자금난 해소에 직접 도움이 안되며, 3월 들어 금융기관들의 수신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미래의 자금공급 능력이 걱정이다.

반면 각종 제도개편과 상황변화로 기업자금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상호채무보증 해소를 위한 자금수요 6조~7조원, 기업들의 외채상환을 위한 원화자금 수요 6조원, 기존 차입금과 관련한 상장사 금융비용 22조원, 결합재무제표도입 기타 불가피한 기업들의 자금수요 12조원 등을 감안할 때 IMF와의 합의에 따른 통화공급 규모 25조원을 훨씬 상회하게 되므로, 도산이 한참 진행되기까지 상당수준의 고금리상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금리인하의 기본여건으로 간주되는 원화환율이 안정될 수준으로 외자유입의 속도를 빨리할 수 있을 만큼 행정규제혁파.재정개혁.정치개혁 등이 제대로 이뤄질 가망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몇가지 부실채권 누적문제와 관련해 긴급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금융시스템의 장래는 어둡다.

첫째, 금융기관이 보유한 불량채권의 상각을 촉진시켜 은행관계자 스스로 얼마나 부실한 상태인지 인지하게 만들고, 이를 내부 경영혁신운동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둘째, 이미 부도난 기업들은 관련 금융기관의 책임으로 해체하든지 확실히 살리든지 빨리 결론을 내 유동성상태가 투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블랙홀을 계속 놔두면 고금리 시정이 안돼 미구에 부실기업을 양산하는 결과를 빚는다.

셋째, 불량채권 등의 유동화를 서둘러야 전체자금의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

성업공사의 증자뿐만 아니라 이미 매수한 담보자산의 재활용과 부실채권을 기초로 한 파생증권 (ABS.MBS) 발행 등 뒤처리가 원활토록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에 관련된 제도적.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또 신용리스크별 대출채권을 재분류해 은행의 신용상태를 재구성토록 만들어야 한다.

넷째, 금융기관들의 재무건전도 향상을 두드러지게 하려면 전반적 자산가격 (주식.부동산.외환) 의 상승 유도가 불가피하다.

국제수지상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종류의 경기대책 (예컨대 관광.정보 등 생산적 서비스산업인프라 구축) 이 요구되고, 부동산의 증권화촉진 및 투기억제 위주의 부동산관련 제도의 재검토가 요망된다.

공기업의 해외매각을 통해 실업자대책자금과 예금보험기구에 대한 재정지원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히 추진할 과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고금리대책은 기업의 채산성 향상과 재무구조 개선 지원이다.

외자유입 촉진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대출기피, 기업끼리의 신용기피 현상을 한꺼번에 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스스로 강력한 자구책을 강구토록 확실한 정책포지션을 취함과 동시에 기업이 관리불가능한 사회비용 (물류비용.준조세.사회전반의 임금수준.금융기관의 중개비용 등) 을 줄이는 개혁이 빨리 진행돼야 한다.

과감한 가속상각제도의 도입으로 현금확보 기회를 넓혀주는 법인세.소득세법의 개정도 요구된다.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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