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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감독이 만드는 '곡예사의 첫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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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4월 일본 도쿄에서 '수퍼 가부키'를 봤다. 함께 극장 문을 나서던 김윤철(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교수는 "가부키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창조한 점이 놀랍다"며 "우리에게도 저런 식의 대중극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아쉬워했다.

사실 국내에는 이렇다할 대중극이 없다. 설과 추석, 어버이날을 겨냥해 매번 악극이 올라가지만 '성수기'를 노리는 한철 상품에 불과하다. 열네살 때 집을 뛰쳐나와 1958년 악극단에 입단했던 '악극 전문 배우' 김태랑(60)씨는 "악극은 물결 같은 흐름 속에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공연"이라며 "악극의 뿌리도 모르는 이들이 오히려 악극을 망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국립극단의 이윤택 예술감독이 칼을 빼들었다. 이름하여 '서커스 악극-곡예사의 첫사랑'(주최 국립극장.경기도문화의전당.연희단거리패.동춘곡예예술단)이다. 연출을 맡은 이 감독은 "'딴따라'라고 멸시하며 대중극을 말살하는 데 주역이었던 국립극단에서 대중극을 부활시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곡예사의 첫사랑'에선 서커스와 연극이 만난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유랑극단'을 원작으로, 극작가 박용재가 극본을 썼다. 이를 다시 박용재.박현철.이윤택 등 세 사람이 공동 재구성한 작품이다. "예술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이 감독의 포부가 엿보인다.

서커스는 '극 중 극' 형식으로 들어간다. 우선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20분간 자유롭게 서커스를 관람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도 만담과 차력, 마임, 트로트, 공중 곡예, 마술, 악극 화술 등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 감독은 '진짜 서커스'에 담긴 애환과 묘기를 녹이기 위해 동춘곡예예술단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이 시대 마지막 서커스단'으로 불리는 동춘곡예예술단의 박세환 단장은 "60년대에는 동춘서커스 단원만 250명이 넘을 만큼 호황을 누렸다"며 "허장강.서영춘.배삼룡.백금녀.남철.남성남.장항선씨 등 당대에는 서커스단이 스타를 배출하는 산실이었다"고 말했다.

'곡예사의 첫사랑'에는 남철(71).남성남(74) 콤비가 특별 출연한다. 남철은 "50년 전에 경험했던 서커스단 생활이 눈앞에 선하다"며 "사라져가는 대중극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감회를 밝혔다. 또 47년 백조가극단에서 소녀 가수로 데뷔했던 원희옥(69)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트로트를 부른다.

이 감독은 "대중극 배우들이 트로트를 부를 땐 뜻밖에도 맑고 고운 클래식 발성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오히려 정극 배우들보다 기본기가 탄탄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곡예사의 첫사랑'이 예술과 흥행, 양쪽에서 박수를 받는다면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22~24일), 국립극장 하늘극장(8월 10~29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야외천막극장(9월 8~29일), 2만5000~3만5000원, 02-2280-4115~6.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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