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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확대 겉돌아…법령 허점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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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실업대란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올들어 고용보험적용 범위를 잇따라 넓혀 놓았으나 극심한 경기침체로 대상 사업체들이 가입을 못하거나 기피하고 있어 실업급여 확대 작업이 겉돌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사업장을 퇴직한 근로자중 상당수가 보험료를 내지 않고 실업급여를 받아가는 '무임승차자' 가 될 것으로 보여 성실 납부자와의 형평성 시비가 제기되는 등 실업급여 제도의 파행운영이 우려된다.

이는 현행 고용보험법이 보험료 납부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대상만 되면 실업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노동부와 일선 지방노동사무소에 따르면 3월1일부터 확대 적용된 5~9인 사업장 (대상 6만4천5백52곳, 근로자 45만4천명) 의 경우 법정 성립신고 기한 (14일) 하루전날인 13일까지 10%대의 저조한 신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천지방노동사무소는 13일 현재 2천3백22개 대상 사업장중 13.8%인 3백20곳이 신고를 마친 것으로 집계됐다.

의정부지방노동사무소는 10%, 수원지방노동사무소 18%, 서울북부지방노동사무소 12%등으로 잠정 집계됐다.

또 올해 1월1일부터 확대 적용된 10~29인 사업장 (대상 6만4천7백4곳, 근로자 1백51만명)가운데 성립신고를 마친 곳은 법정신고기한 (1월14일) 을 훨씬 넘긴 2월말 현재 67.9%인 4만3천9백19곳에 머물러 많은 사업장이 고용보험을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보험료는 5~29인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각 평균임금의 0.3%씩을 납부해야 하며, 실업급여는 10~29인 사업장 실업자의 경우 7월1일부터, 5~9인의 사업장은 9월1일부터 지급된다. 이처럼 고용보험 신고율이 저조한 것은 경기가 극도로 위축돼 휴.폐업, 도산 사업장이 많고 가동중인 업체도 당장 종업원 임금조차 지급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북부사무소의 경우 5인 이상 사업장 대표 4천여명에게 고용보험 확대에 따른 설명회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12일 열린 행사에 10%를 조금 넘는 4백32명만이 참석했다.

부천사무소 이호갑 (李虎鉀) 관리계장은 "회사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운영하지 않은채 곧 폐업신고를 하겠다며 신고하지 않는 곳이 많다" 며 "독촉전화를 하면 정부가 경제를 망쳐놓고 웬 '세금' 을 거두느냐며 욕설과 항의를 하는 사업주도 있다" 고 말했다.

다른 노동사무소 관계자들도 "현행법대로라면 보험료를 내지않은 업체의 퇴직근로자에게도 일단 실업급여를 지급한 뒤 사업주를 상대로 밀린 보험료의 강제징수에 나서야 하므로 오는 7월부터는 엄청난 행정력이 필요하게 되며, 특히 회사가 폐업.도산했을 경우에는 징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며 "이 상태에서 전 사업장 근로자로 확대할 경우 훨씬 심각한 사태가 빚어질 것" 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유길상 (柳吉相) 연구위원은 "고용보험제도 준비단계에서부터 보험료 납부 때에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제기됐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고 지적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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